좋은생각 카테고리

[오늘의 만남] 애호박 사세요
2019.06.07   조회수 : 1,541    댓글 : 4개

나는 군산에서 작은 마트를 운영한다. 새로 나간 모임에서 누군가 내게 질문했다. “장사하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손님과 싸운 일은 강렬히 남았어도 행복한 기억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 질문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래도 일을 시작한 지 3년째다. 언젠가 하루쯤은 눈물 쏙 빠지게 행복한 날이 있지 않았을까?

 

그날 이후 하루하루를 좀 더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 싶은 순간이 왔다. “손님, 오늘은 애호박을 사셔야 합니다.” “왜요?” “잘 안 팔립니다. 하하.” “뭐예요, 호호. 애호박은 아직 집에 남았는데.” “괜찮아요. 저도 그냥 말 걸고 싶어서 그랬어요.”

 

애호박을 소재 삼아 손님과 이야기하며 웃을 때, 과자를 선물받은 아이가 엄마를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볼 때, 아이에게 풍선으로 꽃을 만들어 주자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웃음 지으며 좋아할 때……. 이런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특별해 보이는 일은 아닐지라도 이웃과 대화하고 웃음을 나누는 순간 물통에 물감이 퍼져 나가듯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을 모르는 것처럼 행복할 때는 행복한지 모르는 것일지도.

 

나태주 시인은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대단한 사건이나 수중에 큰돈이 없더라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함께 웃으며 이야기 나눌 이웃이 있어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지도 모른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손님, 오늘은 애호박을 사셔야 합니다!”

 

김경욱 님 | 마트 주인 

 

       

댓글 쓰기

댓글 (4)

바른말쟁이
2019.06.18
좋은 글이네요.
소소한 대화가 사람간에 정을 싹트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은경
2019.06.19
삭제
오늘부터는 마트에가는 느낌이 다를것 같아요
힝상 응원합니다 ~^^
buchu
2019.06.23
ㅎㅎ 이 글은 몇번을 읽어도 제미나고 교훈주는 글인갓 같네요ㅎㅎ
유종하
2019.09.15
삭제
감사합니다.

같은 카테고리의 글들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잘 듣는 사람
2019.10.08   조회수 : 300    댓글 : 0개
올여름,샌프란시스코로 출장 겸 휴가를 다녀왔다.여행 여정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게 목적 중 하나였다.자녀들과 여행할 때 아이들에게 영상 촬영 기회를 주고,왜 그것을 찍었는지 대화 나누면 좋다.사물과 풍경을 예사로 보지않고 관찰하는 법을 배우고,이야기 만드는 근력을 키울 수 있다.또 하나의 목적은 세계 곳곳에서 온 학생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었다.자신과 가족,고국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면‘할 말’이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어떤 태도로 듣는지,혹시 답이 정해진 질문을 하고,아이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엔 인색하지 않은지 깨닫고 한국에 돌아와 부모들과 나누고 싶었다.첫날 나는 삼 주간의 출장 목적을 달성한 듯 기뻤다.질문에 대한 진행자의태도 덕이다. ‘대화법’, ‘행복한 소통’등을 주제로 자주 강연하면서 말 잘하는사람만큼‘잘 듣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경청과 공감과 반응을갖춘 청자야말로 화자를 말할 맛 나게 하고 자존감도 올려 주지 않는가.그날 진행자는 이 모든 걸 실천하고 있었다.학생들의 질문을 받는 그는 영어 발음도 각양각색에 문법도 맞지 않는 질문을 알아들으려 노력했고,그렇지못했을 때는“미안해요.내가 잘 못 들었어요.다시 말해 주면 고맙겠어요.”하며 재차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질문을 들으면“좋은 질문이에요.고맙습니다.”하고 영어 초급자도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친절히 답변했다. ‘부탁한다’와‘고맙다’는 말의 위력을 새삼느낀 날이었다.질문하는 이에게 몸을 기울이는 경청,질문의 가치를 높여 주는 공감의 태도,못 알아들었을 때 화자를 탓하지 않고 청자인 자신의 몫으로돌리는 배려와 친절함이야말로‘예쁜 말’이다.나는 말의 힘을 믿는다.말이야말로 인간의 품격을 높이는 가장 고매한 수단이다.더운 여름,시원한 곳에서 예쁜 말을 주고받으며‘말하는 것’과‘듣는것’을 배웠으니 실천할 일만 남았다.나도 누군가의 말에 낯빛을 부드럽게 하고,몸과 귀를 기울이며,따뜻하고 알아듣기 좋게 답하리라.세상은 말 배움터고 모든 사람이 말 스승이다.임영주 님|부모 교육 전문가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빛나는 지금
2019.10.08   조회수 : 336    댓글 : 0개
우리 부부는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갔다.더 추워지기 전에 단풍 구경 하자고무작정 떠난 길이었다.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리와 같은 은퇴 부부를 만났다.그들은 차를 가져왔고,다음 날 일정을 말하다 자연스레 합류했다.시내나 한바퀴 둘러볼 참이었던 우리는 등선 폭포,구곡 폭포를 함께 갔다.웬만한 명승지는 다 가 보았다고 자부했으나 처음 보는 풍경에 놀랐다.“댁들을 만나 호강하네요.”내가 고마워하자 부부 중 아내가 답했다. “남편덕분이지요.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저를 위해 왔으니까요.”그녀의남편이 으쓱하며 미소 지었다. “제가 집에 자주 혼자 있으니 오히려 아내가 명분 만들어 준 거죠.”오랜 시간 이혼 조정 위원으로 일한 나의 직감이 발동했다. ‘이 부부에게 황혼 이혼은 먼 얘기겠구나.말을 참 예쁘게 하네.’이혼을 결심하고 온 부부 대부분은 거침없이 막말을 내뱉는다.상대방을 탓하며 분노하고 상처 주는 말을서슴지 않는다.나도 남편과 이혼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특히 은퇴직후가 위기였다.먼저 은퇴한 남편이 우울증에 빠진 것.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 수시로 내게 전화 걸어 빨리 오라고 독촉했다.부부는 아내가 졸업한 학교를 찾는 추억 여행 중이라고 했다.하나 너무 달라져서 아쉬웠다고.내가 말했다. “계획에 없던 이런 기회를 우리에게 베푸는복을 쌓았잖아요.정말 고마워요.”“두 분을 만나 우리도 좋았어요.” “당신들은 부부 싸움 한번 안 했을 것 같네요.서로를 추켜세워 주니.” “그럴 리가요.지금도 남편 덕에 자주 싸우는데요.”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그들에게도 아픔이 있었으리라.어쩌면 더 이상 젊지 않기에,큰 욕심을 내지 않기에 누리는 행복일지도 몰랐다.단풍이 빛나는 가을날,우리는‘지금’이라는 선물을 넘치게 받고 있었다.정수진 님|경기도 파주시
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한 사람의 존재
2019.10.08   조회수 : 276    댓글 : 2개
2011년,나는 임용 시험을 준비하면서 재미나게 수업하는 국어 교사가 될 거라고 마음먹었다.하지만 첫 부임지에서 만난 아이들은 나의 교직 생활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교과서는 커녕 필기도구를 가져온 아이가 한 반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했다.아이들은교내 흡연에,대화 중 네댓 번은 욕설을 썼고,심심찮게 범죄까지 저질렀다.나는 아무것도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원형 탈모까지 생겼다.차차 익숙해질 즈음 깨달은 것은 그 거친 아이들도 결국‘아이들’이라는 점이다.아이들은 조금씩 속마음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가난한 집안,부모의 이혼,진작 포기한 공부,술과 담배의 유혹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절망.표현은 거칠지만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은 여느 청소년과 다를 바 없었다.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얼마나 가는지 보자는 비아냥거림과 비웃음에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아이들과 공부했다.지게차나 굴삭기 자격증 하나라도 손에 쥐여 사회로 내보내고 싶었다.나도 잘 모르는 내용인지라 전공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과 후수업을 들은 뒤 더 쉬운 말로 바꿔서 가르쳤다.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갖고,자신의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길 바랐다.세상이 무시해도괜찮다고 말해 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같이 울고 웃으며 그 시기를 넘겼다.지금 아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밥벌이하고,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며 잘 지낸다.나는 한 것도 없이 어느새9년 차 교사가 되었다.여전히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 쉽지 않고,매 시간 수업에 들어가기 전 긴장되고 떨린다.강의를 하고 책도 내는 다른 훌륭한 교사와 달리 나는 평범해서 스승과 제자라는 말을 쓰는 것도 낯부끄럽고 어색하다.그저 어려울 때 생각나는,얘기 잘 들어 주는 어른이면 좋겠다.그래서 제자 대신 친구라는 표현을 쓴다.누구나 방황하고,좌절과 절망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그게 청소년기라면 더욱 견디기 힘들 터다.하지만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고,함께 고민하고,괜찮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아이들은 그 시기를 무사히 건너 두 발로 우뚝 선다.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이번 스승의 날에도 첫 담임을 맡았던 친구들이 꽃바구니와,영화 대사를 인용해“삼천만큼 사랑해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조만간 또 집으로 불러 밥을 해 먹이며 각자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이원재 님|강원도 원주시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격려받아 마땅한 청춘
2019.10.08   조회수 : 296    댓글 : 0개
가능하면 내가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그건 제자ㄱ군이 보내 준 카톡 내용 때문이었다.뒷부분만 옮기면 이렇다.“가끔 이렇게 안부 인사를 여쭸어야 하는데 공부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선생님,저는 조종사의 꿈을 품고 항공 운항 학과에 합격하여 성인으로서 세상에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언젠가 제가 성공해서 선생님을 뒷좌석에 태워 드리고 싶습니다.”ㄱ군이 이제 대학1학년생이니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오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그 후에도 조종사가 되려면 어려운 시험을 치러야 할 테고,수습 기간과 부조종사 같은 단계를 거쳐야 하리라.그러니 정식으로 자신의 비행기를 몰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그러니 내가 오래 살아야 제자가 모는 비행기에 앉아 볼 수 있지 않겠는가.물론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되라는 법은 없으니 앞으로ㄱ군의 인생행로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나는 당분간 제자가 모는 비행기 뒷좌석에 앉는 꿈을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그런 꿈 하나 갖고 사는 것도 그리 큰 사치는 아닐 테니.ㄱ군은 프로 야구 선수가 될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다.내가 근무한 중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ㄱ군이 바로 야구부 소속이었다.중3때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 배정받아1년간 함께 생활했다.오전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운동장에서 야구 훈련을 한ㄱ군은 야구 특기자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되어 있었다.그런ㄱ군이2학기 말 무렵 큰 사고를 쳤다.소식을 듣고 달려간 보건실에는ㄱ군에게 맞았다는 친구가 거즈로 싸맨 코를 틀어쥐고 있었다.곁에는ㄱ군이 겁에 질려“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하며 울먹였다.우선 다친 학생에게 응급 치료를 하도록 했고,양쪽 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렸다.그런 후 두 학생을 진정시킨 다음 자초지종을 들었다.듣고 보니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함께 놀다 상대편 학생이 이죽거리는 걸 뿌리치고 교실로 들어오는데,계속 따라와 기분을 상하게 한 모양이었다.욱하고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두른 거고.상대가 시비를 걸었건 어쨌건 폭력을 휘두른 당사자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했다.ㄱ군은 겁에 질려 있었다.평소에 그리 얌전한 편이었다고 할 수는 없고 가끔 불뚝하는 성질도 있긴 했지만 본성은 모질거나 악하지 않은 친구였다.일단 부모님에게 죄송했을 테고,그 다음에는 고등학교 진학 문제가 걸렸을 터였다.학교 폭력 가해자로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면 자칫 야구 특기자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맞은 친구는 다른 반 학생이었는데 둘 다 같은 야구부 소속이었다.그래서 평소에는 이물 없이 어울려 노는 사이이기도 했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맞은 학생을 위로하고,때린 학생이 뉘우치고 사과하도록 하는 정도의 일이었다.다행히 같은 야구부 소속이라 부모끼리도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교내봉사 정도의 징계와 치료비를 부담하는 선에서 원만히 수습할 수 있었다.ㄱ군은 그때 내가 자신을 호되게 몰아붙이면서 야단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진 모양이다.그렇게 해서ㄱ군은 무사히 특기자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그런데 한 학기도 지나지 않아 야구를 그만두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다리를 다쳐서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거였다.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에 매달려 왔는데,뒤늦게 공부를 하려니 남들보다 몇 배는 힘들었으리라.물론 야구라는 운동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을 테지만,무엇보다 잃어버린 자신의 꿈에 대한 상실감이 컸으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그나마1학년 때 야구를 그만두게 돼서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이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었고,결국 제2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전화위복이니,인생사 새옹지마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ㄱ군이 계속 야구를 했어도 프로선수가 되기는 힘들었을 게다. 90%이상이 중도에 떨어져 나갈 정도로 워낙 경쟁률이 심한 세계이므로.ㄱ군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싶다.내가 꼭 비행기 뒷좌석에 앉고 싶어서가 아니라,비운을 딛고 제2의 꿈을 향해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격려받을 자격이 있는 청춘인 까닭이다.박일환 님|시인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