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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뚜벅뚜벅
2019.06.07   조회수 : 1,475    댓글 : 3개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 나는 ‘뚜벅뚜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버지와 가족처럼 산 누렁이 때문이다. 아버지는 곡식을 읍내 오일장에 실어 나르는 달구지꾼이었다. 평생 소를 벗 삼아 농사 지으며 살았다. 사람은 밥 한 끼 걸러도 괜찮지만 말 못하는 동물을 굶기면 벌 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소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읍내 남원 장까지 이십 리 길. 아버지는 소가 힘들까 봐 달구지에 타지 않고, 나란히 뚜벅뚜벅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짐 가득 싣고 고갯길을 오를 땐 목을 긁어 주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소가 힘내도록 추임새를 넣었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 소는 재산 목록 1호였다. 밭에 나가 쟁기질, 써레질을 하고 달구지를 끌며 두 사람 몫을 톡톡히 해냈다. 아버지는 소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지 않고 틈틈이쉬게 해 주었다. 가마솥에 보리와 쌀겨를 듬뿍 섞어 여물을 쑤어 주고, 어디를 가든 앞에서 고삐를 잡는 대신 제 속도대로 걷도록 배려했다. 장에 다닐 땐 목에 들꽃 한 묶음을 걸어 주고 고삐에 빨강, 파랑 리본을 감아 소의 기분을 좋게 했다. 아버지는 소의 숨소리만 듣고도 마음을 알아차리고 추슬러 주었다. 소는 아버지와 애환을 함께한 동반자요, 소중한 친구였다.

 

아버지는 달구지를 끄느라 생긴 신경통으로 고생하면서도 2남 2녀를 묵묵히 키웠다. 가족들은 힘들어도 바른길만 고집하는 아버지를 답답해했다. 우리도 읍내 나가 작은 점방이라도 하나 차리면 이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만큼 사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며 누렁이와 뚜벅뚜벅 일만 했다.세월이 흘러 돌이켜 보니 세상의 순리 따라 별다른 욕심 없이 느리게 산 아버지 뜻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동네에 궂은일이 생기면 솔선수범하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참 지혜로웠다. 지금 내가 삶에 고마워하는 것도 아버지와 누렁이가 뚜벅뚜벅 쟁기질하고 달구지 끄는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 아닐까.

 

행랑채 헛간에 걸린 아버지의 지게와 쟁기 그리고 손때 묻은 농기구를 보았다. 아버지가 평소 햇볕을 쬐며 쉰 감나무 옆 낡은 의자에 앉으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아버지는 정미소 마당에서 노는 나를 주막으로 불렀다. “어서 들어와라. 춥다.” 갈퀴 같은 딱딱한 손으로 내 손을 끌어 연탄불을 쬐게 하고 두툼한 돼지고기를 입에 넣어 주었다.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나하게 취해 “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하고 노래 부르면 논에 있는 기러기들이 놀라 푸드덕 날아올랐다. 장에 간 아버지를 마중 나가면 어둠 속 소쩍새, 부엉이, 개구리 울음소리에 무서워하면서도 소달구지를 끌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아버지에게 과자 사 왔느냐고 묻기 바빴던 철부지 시절도 생각난다.

 

행랑채에 걸린 누렁이 워낭을 가져와 베란다에 달아 두었다. 바람이 불면 산사의 풍경처럼 땡그랑땡그랑 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면서 고향의 풍경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사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고향 산에 누워 농사지었던 들판과 동네, 집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다. 아버지가 그리우면 워낭을 살며시 흔들어 본다. 아버지와 누렁이 덕분인지는 몰라도 내 사전에 자동차는 없다. 유년 시절 아버지와 누렁이처럼 뚜벅뚜벅 산하를 거닌 기억 따라 평생 이 말을 좋아하며 살까 한다.

 

강석두 님 | 서울시 강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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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사명당
2019.06.19
삭제
평생 일만하시며 마음에 여유한번 느껴보지 못하신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고 보고프네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나인버드
2019.06.21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지는  아버님의 그리움이 참 잔잔합니다. 잘 읽혀지는 글이네요^^
푸른나무
2019.09.16
삭제
좋은 글을 읽으니 마음이 평화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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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마루] 격려받아 마땅한 청춘
2019.10.08   조회수 : 296    댓글 : 0개
가능하면 내가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그건 제자ㄱ군이 보내 준 카톡 내용 때문이었다.뒷부분만 옮기면 이렇다.“가끔 이렇게 안부 인사를 여쭸어야 하는데 공부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선생님,저는 조종사의 꿈을 품고 항공 운항 학과에 합격하여 성인으로서 세상에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언젠가 제가 성공해서 선생님을 뒷좌석에 태워 드리고 싶습니다.”ㄱ군이 이제 대학1학년생이니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오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그 후에도 조종사가 되려면 어려운 시험을 치러야 할 테고,수습 기간과 부조종사 같은 단계를 거쳐야 하리라.그러니 정식으로 자신의 비행기를 몰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그러니 내가 오래 살아야 제자가 모는 비행기에 앉아 볼 수 있지 않겠는가.물론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되라는 법은 없으니 앞으로ㄱ군의 인생행로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나는 당분간 제자가 모는 비행기 뒷좌석에 앉는 꿈을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그런 꿈 하나 갖고 사는 것도 그리 큰 사치는 아닐 테니.ㄱ군은 프로 야구 선수가 될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다.내가 근무한 중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ㄱ군이 바로 야구부 소속이었다.중3때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 배정받아1년간 함께 생활했다.오전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운동장에서 야구 훈련을 한ㄱ군은 야구 특기자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되어 있었다.그런ㄱ군이2학기 말 무렵 큰 사고를 쳤다.소식을 듣고 달려간 보건실에는ㄱ군에게 맞았다는 친구가 거즈로 싸맨 코를 틀어쥐고 있었다.곁에는ㄱ군이 겁에 질려“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하며 울먹였다.우선 다친 학생에게 응급 치료를 하도록 했고,양쪽 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렸다.그런 후 두 학생을 진정시킨 다음 자초지종을 들었다.듣고 보니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함께 놀다 상대편 학생이 이죽거리는 걸 뿌리치고 교실로 들어오는데,계속 따라와 기분을 상하게 한 모양이었다.욱하고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두른 거고.상대가 시비를 걸었건 어쨌건 폭력을 휘두른 당사자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했다.ㄱ군은 겁에 질려 있었다.평소에 그리 얌전한 편이었다고 할 수는 없고 가끔 불뚝하는 성질도 있긴 했지만 본성은 모질거나 악하지 않은 친구였다.일단 부모님에게 죄송했을 테고,그 다음에는 고등학교 진학 문제가 걸렸을 터였다.학교 폭력 가해자로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면 자칫 야구 특기자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맞은 친구는 다른 반 학생이었는데 둘 다 같은 야구부 소속이었다.그래서 평소에는 이물 없이 어울려 노는 사이이기도 했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맞은 학생을 위로하고,때린 학생이 뉘우치고 사과하도록 하는 정도의 일이었다.다행히 같은 야구부 소속이라 부모끼리도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교내봉사 정도의 징계와 치료비를 부담하는 선에서 원만히 수습할 수 있었다.ㄱ군은 그때 내가 자신을 호되게 몰아붙이면서 야단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진 모양이다.그렇게 해서ㄱ군은 무사히 특기자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그런데 한 학기도 지나지 않아 야구를 그만두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다리를 다쳐서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거였다.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에 매달려 왔는데,뒤늦게 공부를 하려니 남들보다 몇 배는 힘들었으리라.물론 야구라는 운동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을 테지만,무엇보다 잃어버린 자신의 꿈에 대한 상실감이 컸으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그나마1학년 때 야구를 그만두게 돼서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이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었고,결국 제2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전화위복이니,인생사 새옹지마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ㄱ군이 계속 야구를 했어도 프로선수가 되기는 힘들었을 게다. 90%이상이 중도에 떨어져 나갈 정도로 워낙 경쟁률이 심한 세계이므로.ㄱ군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싶다.내가 꼭 비행기 뒷좌석에 앉고 싶어서가 아니라,비운을 딛고 제2의 꿈을 향해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격려받을 자격이 있는 청춘인 까닭이다.박일환 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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