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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기분이라는 저울

집 근처에 대학이 있어서 가끔 그곳으로 산책을 간다. 학교를 한 바퀴 걷다가 커피를 한잔 사 먹기도 하고, 운동장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의자에 앉아 그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야구 시합이 열렸다. 아마추어 야구 시합인 듯싶었는데, 팀 옷을 갖춰 입은 사람이 반 정도, 개인 운동복을 입은 사람이 반 정도 되었다. 그들을 보자 최근에 본 웹툰(인터넷 만화)이 생각났다. 사회인 야구 이야기를 그린 웹툰이었다. 한 선수가 감독에게 강팀의 조건에 대해 묻는다. 그때 감독이 진지하게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한다.

 

“동계 점퍼, 풀오버(스웨터), 팀 가방.” 그러면서 덧붙여 설명하길 그걸 다 갖춘 팀에게 이겨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 야구 시합을 보면서 지금 시합을 하는 팀들은 그 세 개 중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동계점퍼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다지 경기를 잘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투수는 스트라이크보다 볼을 더 많이 던졌는데, 내가 타자라면 가만히 서 있다가 볼넷으로 걸어 나갈 것 같았다. 그런데도 많은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중 장타를 때리는 선수도 종종 있었지만 삼진을 당하는 선수가 더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가만있지. 그러면 볼인데. 

 

수의 제구가 잘 잡히지 않아 몸에 맞는 볼도 종종 나왔다. 그래도 선수들은 방망이를 휘두르고 삼진을 당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일요일 오후에 보기 좋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 프로 야구 경기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방망이를 휘두르고, 파울을 치고, 땅볼을 치고, 삼진을 당하는 것. 그 풍경이 좋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갑자기 ‘기분이 좋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언제 마지막으로 기분이 좋았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좋은 적도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냥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 나는 그런 감정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휴대 전화를 꺼내 기분이라는 한자를 찾아보니, ‘기운 기(氣)’에 ‘나눌 분(分)’이었다. ‘기’는 당연히 예상된 한자였지만 ‘분’은 예상 밖이었다. 나눌 분이라니.

 

수십 개의 결. 수십 개의 느낌. 수십 개의 감정. 나는 내 마음속에 저울이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지금 저 삼진을 당하는 타자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올려 보았다. 1.5 정도. 눈금이 한 개 반 올라갔다. 일요일 오후. 의자에 앉아서 나는 최근 한 달 동안 가장 기분이 좋았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삼 주 전인가. 가벼운 등산을 갔다가 부부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을 때. 부부는 내 앞에서 걷고 있었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어느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그때 거기서 본 나무 기억나? 뭐 그런 대화였다. 남편이 전혀 기억을 못하자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 개똥 밟았을 때. 그 말에 남편이 아, 거기, 하고 대답했다.

 

그들의 뒤에서 나는 그 대화를 듣고 빙그레 웃었다. 하산하는 내내 그 말이 재미있어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은 2 정도. 어린이날 가족하고 식사를 하다 중학생이 된 조카와 어린이의 나이 기준에 대해 토론한 기억도 났다. 그 순간의 기분은 몇일까? 나는 3과 4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3으로 결정. 눈금이 너무 높으면 0으로 내려오는 게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0을 잘 유지하는 것이니까.

 

야구 시합을 하는 사람들은 누가 이기고 지든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져도 기분이 0 아래로 내려갈 것 같지 않았다. 사회인 야구를 그린 웹툰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감독은 강팀의 조건을 한 가지 더 말한다. 그건 바로 어묵이라는 것이다. 더그아웃(야구장의 선수 대기석)에서 어묵을 끓여 먹는 것. 그게 강팀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론인가 싶지만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따뜻한 국물에 손이 녹아 공이 잘 잡히고, 배가 불러 타격도 잘되는 법이라고. 나는 야구 시합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말해 주고 싶었다. 겨울이 되면 어묵탕을 끓여 먹으라고. 그러면 그때 구경을 하러 오겠다고. 그 풍경을 생각하자 다시 기분의 눈금이 1로 올라갔다. 

 

그날 이후, 나는 자기 전에 창을 열고 하늘을 본다. 달을 보기 위해서다. 달을 보고 나면 기분의 눈금이 0.5 정도 올라간다. 내 생각엔 그 정도가 자기 전에 딱 적절한 기분이었다.

 

윤성희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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