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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아버지의 빚

 

아버지는 십 년간 어머니 병간호를 했다. 어머니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존심도 셌다. 본인 체면 상하는 일 따윈 절대 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꽤나 힘들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를 간호하게 됐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이 아니면 병수발을 받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자식들 힘들까 싶어서였을까, 그래도 의지할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다고 생각한 걸까? 

 

강인하던 어머니는 아프면서 응석받이로 바뀌어 갔다. 신부전 증세가 심한터라 매일 네 번씩 복막 투석을 했다. 새벽 세 시, 아침 열 시, 오후 세 시 그리고 밤 열 시. 투석 장치를 꽂은 곳의 소독과 그와 관련된 준비. 아버지는 온종일 투석 준비를 해야 했다. 게다가 투정 부리는 어머니를 상대하는 일은 정신적 고단함까지 안겨 주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끝까지 잘 간병할지 걱정스러웠다. 그 옛날처럼 훌쩍 사라지진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다. 지난 사십여 년간 가정을 돌보고 자식을 입히고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힘들었을 아내에게 빚을 갚듯.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갑자기 심장 마비가 왔다. 어머니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 손을 붙잡고 연신 울음을 훔치며 말했다.

 

“여보, 가지 마. 날 더 괴롭혀도 돼. 내가 아직까지 못해 준 게 너무 많아. 내가 다 해 줄 테니 그때까지 가지 마.”

 

건강한 편인 아버지에게 간경화가 생길 정도로 어머니 병간호는 고됐다. 한때는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한 사람이 아버지라는 생각에 원망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지막 길, 아직도 해 줄 게 많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간 쌓인 미움이 모두 녹아내렸다. 지난 세월 우리 가족에게 진 빚을 갚는 행동과 마음이 담긴 말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말이 아닌,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이라는 것. 아버지가 십 년간 보여 준 삶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가르침이었다.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다.

 

김동욱 님 | 컨셉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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