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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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쌍치? 쌍치!

“유진아, 발령 어디로 났어?” 

“쌍치.” 

“응?”

 

내 첫 발령지는 순창에 있는 ‘쌍치’라는 곳이었다. 전화로 주소를 말할 때면 “치약 할 때 ‘치’요.”라고 대사처럼 읊었다. 내가 사는 전주에서 쌍치까지는 차로 50분이 걸렸다. 쌍치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고불고불 고개를 넘자 산동네가 나왔다. 다 왔나 했더니 거기서부터 또다시 들어간 뒤에야 조그만 면내가 나타났다. 그 와중에 앞차가 갑자기 멈추었다.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주민과 한참 안부를 나눴다. 

 

카페, 편의점은 가당치도 않은 얘기였다. 하나 있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 먹으려고 몇번을 어슬렁거렸으나 매번 문은 닫혀 있었다. 쌍치가 고향인 동료에게 물으니 주인이 열고 싶은 때만 연단다. 특히 농번기에는 거의 열지 않는다고. 기회가 되어 맛본 통닭이 맛있어 또 시키려 했더니, 그 집은 겨울에만 장사한다는 게 아닌가. 장이 들어설 때만 머리를 자를 수 있다며 바삐 자리를 뜨는 직원을 보면 딴 세상 같았다. 

 

쌍치를 벗어나 전주에 오면 대도시처럼 보였다. 빌딩은 왜 이렇게 높으며, 도로는 어쩜 이리 쭉쭉 뻗었는지. 밤에는 수많은 빌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에 뉴욕이 떠오르기도했다. 첫인상이 좋지 않은 쌍치는 봄이 되자 내게 자신의 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산동네에 도착하면 줄지어 선 벚나무들이 꽃잎을 흩날리며 나를 맞이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벚나무가 가지를 뻗어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이 시기에는 도시 사람임이 분명한 운전자가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꽃들이 만발한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새벽에 내린 비가 짙은 안개를 만들어 산에 걸린 구름 속을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페루의 신비로운 도시 마추픽추로 향하는 느낌. 우리 나라로 치면 배추 도사, 무 도사가 사는 구름 나라 같달까. 가을에는 들판에 무수히 핀 구절초가 내 눈길을 빼앗았다. 축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출근하는 대신 천막에서 부침개나 먹고 싶어졌다.

 

쌍치의 겨울은 위험하고도 고혹적이었다.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귀농한 주민은 쌍치에 오고 나서 겨울다운 겨울을 보내 좋다고 했다. 눈이 무릎 아래까지 쌓인날에는 미끄러운 고개를 넘지 못해 헛바퀴 도는 자동차를 여럿 볼 수 있다. 퇴근 시간까지 내리는 눈을 보면 버스가 들어오지 못해 쌍치에 갇힐까 걱정했다. 다행히 무사히 쌍치를 빠져나와 다음 날 버스로 출근하면, 밤새 내린 눈이 만든 순백의 경치가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휴대 전화 카메라로 마구 찍었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들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강물이 얼음을 피해 졸졸 흐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출근 중인지 여행 중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나는 쌍치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냈다. 곧 집과 가까운 곳으로 근무지를 옮길 예정이다. 이곳을 떠나 도시에서 운전하다 보면 아름답고 여유로운 쌍치가 그리워지지 않을까.

 

홍유진 님 | 전북 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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