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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늦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가 서른.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다. 15년간의 공백으로 힘든 것은 형편없이 떨어진 나의 바둑 실력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시선이 더 따가웠다. “그 나이에 실력이 늘겠느냐.” “어린애들 머리를 따라갈 수 없다.” “프로 되는 게 만만해 보이냐.” 등등. 내가 이겨야 하는 상대는 띠동갑보다 훨씬 어린 십 대 초중반의 아이들. 그들은 짓궂게도 나를 ‘이모’라고 불렀다.


하루는 세계 어린이 바둑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아이와 마주 앉았다. 그 아이는 언론의 주목은 물론 도장에서도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내가 유난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지금 이 시대, 이 자리의 주인공이고 나는 주변인이었다. 그 바둑은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 지고 말았다. 대국 후 감상을 나누는 시간, 나는 멋쩍어하며 한두 마디 건넸지만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다른 곳을 보았다. 서둘러 돌을 담았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문을 잠그고 울었다. 실은 아이가 우승한 대회에서 정확히 18년 전 나도 우승을 차지했다. 나 역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당시의 주인공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위치는 너무나 초라해져 있었다.


도장을 그만두고 대만으로 떠났다. 나를 모르는 곳에서 오로지 바둑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곳 사람들은 나를 모르기에 오히려 있는 그대로 봐 주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나의 바둑은 아직 열여섯 살’이라고. 나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자신감도 장착했다. 한국에 돌아오자 거짓말처럼 나의 바둑 실력은 십 대 아이들 못지않게 성장했다. 그리고 지난 3월, 꿈에 그리던 프로 기사가 되었다.

 

숨 막히는 도장, 그곳의 주인공은 그 아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 도은교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나는 결코 내가 아니다. 사람은 외부 시선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본인이 원하는 모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서른네 살에 꿈을 이룬 요즘, 이제야 비로소 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도은교 님 | 바둑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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