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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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편지 소년

뒷집 할머니가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온다. 서울 사는 아들에게서 기다리던 편지가 왔나 보다. 눈꼽쟁이 창 너머로 기척을 살피던 외할머니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선다. 남의 집 속 사정을 낱낱이 엿듣지 않으려는 배려다. 외할머니는 어린 손주를 대견해하면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잘 읽어 드리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문맹률이 높은 시절이긴 하였으나 마을 아이들을 제치고 내가 할머니들의 편지 대독을 도맡은 것은 도회에서 온 아이였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영특한 아이 대접을 받았다. 나는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할머니들 앞에서 으쓱해하며 제법 어른스러운 자세로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대개 ‘부모님 전상서’로 시작하는 편지들을 읽다 보면 자주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가령 “어머니 아버지 저희는 잘 있으니 아무 걱정 마시고 건강하게들 지내고 계십시오.” 같은 지극히 밝은 문장에서 난데없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아이 주제에 어른을 달래는 것이 예의도 아닌 것 같아서 낭독을 멈추고 따라 울길 몇 번이었던가. 알 수 없는 세상일과 무엇인지 모를 서러움에 시작된 내 울음이 그치질 않고 거의 통곡에 가까워지면 이번에는 할머니들이 나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자꾸 읽다 보니 요령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였다. 나는 어느새 물외 꼭지처럼 쓴 얘기는 살짝 눙치고, 잘 익은 가지 속처럼 단 얘기들은 제법 곰살맞게 낭랑한 낭송 조로 할머니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을 줄도 알았다.

 

“오매, 그렸구나. 고놈의 자석이 밥이나 굶지 않는지 모르겄다. 뜨신 밥 먹고살면 거기가 고향인 것이지, 안 그러냐~잉?”

할머니들의 추임새가 따르면 편지글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가락에 실려 영락없는 판소리 사설 조를 띠었다. 중요한 어느 대목에서는 부러 목이 탄다는 듯 뜸을 들이면서 말이다. 그러면 냉큼 사이다나 사탕을 대령시킬 수도 있었다. 편지 읽기가 끝나면 할머니들은 언제나 ‘우리 대추리댁 손주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입이 무거운 아이’라고 덕담인지 당부인지 모를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결코 입이 무거운 아이가 아니었기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여간 심란한 것이 아니었다. 좋은 일은 좀 널리 알려도 좋지 않을까 해서 마을 회관에서 아이들과 놀 때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무슨 속보라도 전하듯이 뉴스 보도를 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 아이들을 통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소식이 알려졌다.

 

어쨌든 나는 마을 할머니들의 집안 대소사를 낱낱이 꿰뚫고 있는 아이로서 늘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할머니들은 장에 다녀오다가도 길에서 노는 내가 보이면 장바구니에서 과일을 꺼내 주기도, 방학이 끝날 때쯤 해선 닭을 잡아 주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이르렀을 땐 편지 대독이 대필로 발전했다. 전화기가 귀한 시절 답장의 위력은 실로 상상을 초월할 만한 것이었다. 편지를 읽을 때의 진상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선물을 아삭거리면서 나는 할머니들이 불러 주는 말을 글로 옮겨 왔다. 그때 마치 무슨 신동이라도 난 듯 찬탄을 거듭하던 할머니들의 경이에 찬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곧 말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여의치 않음을 알았다. 가령 날씨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부터 식은땀이 흘렀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뉘앙스를 고정된 문자 용기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것이 내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소 판 이야기를 전하면서 고향 들녘 밀밭을 한숨처럼 핥고 가는 바람과 불가뭄에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에 대해선 쓸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할머니들의 말을 글로 잘 옮겨 올 수 있을까. 편지로부터 시작한 나의 독서와 글쓰기는 그때의 질문으로 끝없이 회귀한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을 때 그 옛날의 할머니 중 한 분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자네가 편지 읽던 대추리댁 손주 아닌가.” 

많은 분이 세상을 떠났지만 손을 잡아 주는 할머니의 눈빛 속에서 나는 그 옛날의 할머니들과 편지 읽어 주던 소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고 쓸쓸해하던 할머니와 소년을 다시 불러 본다.

 

손택수 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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