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좋은님 에세이] 자전거 만학도
2018.10.10   조회수 : 1,423    댓글 : 1개

스물다섯 여름날, 처음 자전거를 배웠다. 공원에 가 보니 다섯 살짜리도 자전거를 탔다. 나는 그보다 이십 년 정도 늦은 셈이다. 비록 만학도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그 나이 먹도록 자전거도 못 타?” 그간 이런 말을 들어도 당당하게 답했다. 곧 배울 거라고.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변명을 찾자면 어릴 때 자전거를 사 달라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배우는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배울 게 있는 건 행복한 일임을. 다른 사람들 눈에는 해변가 공원에서 자기 몸집만 한 자전거와 씨름하는 남자 모습이 우스웠을지 모른다. 그래도 분명 즐거워 보였을 거다. 입시나 취업 등 필요에 의한 수동적 학습이 아닌, 단지 내가 원한다는 이유로 배우는 게 오랜만이라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꿈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자전거 여행. 거창하진 않지만 배움으로써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음이 중요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워 보고 싶은 사소한 일이 늘 있으면 좋겠다.

 

누구나 “나는 아직도 이걸 못해.”라고 말할 만한 것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그때 이렇게 얘기하면 어떨까. “나는 아직도 배우는 즐거움이 남아 있어서 좋아!”

 

오재희 님 | 부산시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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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is74
20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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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고 네가 있어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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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7   조회수 : 212    댓글 :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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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7   조회수 : 122    댓글 :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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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씨앗 마실
2018.11.09   조회수 : 730    댓글 : 1개
12월이 되면 마을 사람 몇몇이 모여 홍동면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을 만난다. 우리는 이 일을 ‘씨앗 마실’이라고 부른다. 겨울이라 농사일은 없지만, 할머니들의 손은 여전히 분주하다. 일 년 내내 농사지은 콩이나 깨, 시금치 씨앗 등을 체로 치고, 키질로 쭉정이를 날려 튼실한 종자를 고른다.그러기를 수십 년,같은 일의 반복이지만 할머니들에게는 지나온 역사를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씨앗 마실 나간 첫해, 처음 만난 할머니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일흔셋이던 할머니는 스물다섯 살에 시집왔다고 했다. 그때 가지고 온 ‘이팥’이란 토종팥을 48년째 씨로 심고 있었다. 그 긴 세월을 이어 온 까닭이 궁금해 물으니,“지금 것은 맛이 없어.”라고 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어릴 적 친정 엄마가 해 준 팥죽이며 팥빵 맛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키우는 것이다. 시집올 때씨앗을 가져온 이유를 물었다.“지금이야 텔레비전이며 냉장고를 혼수로 해 가지만, 옛날엔 딸이 시집간다고 하면 그해 농사지은 것 중에 제일 좋은 씨앗들만 골라서, 옷 한 벌과 함께옷장 속에 넣어 주셨지. 그게 다야.”또 다른 할머니는 열여덟 살에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등 떠밀려 시집왔다. 가마를 타고 이틀이 걸려 왔다고 하니, 꽤 부잣집에서 시집온 것이 분명했다. 그때 가져온 씨앗이 ‘청태’라 부르는 푸른 메주콩이다. 동네에서 청태는처음 봐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할머니에게도 아직까지 이 씨앗으로 농사짓는 이유를 물었다.“우리 동네에는 시집갈 때 친정에서 가져온 씨앗을 밑지면(씨앗 농사를 잘못 지어 다 없어지면) 친정과 연이 끊긴다는 말이 전해지거든.”나는 그제야 비로소 여든 넘은 할머니 중 유독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는 분이많은 이유를 알았다.열여덟, 스물에 시집온 할머니들의 씨앗에는 그분들의 역사와 애환, 희망이고스란히 담겼다. 그것들이 지금의 우리를 지탱해 주는지도 모른다. 그 귀한씨앗을 마음껏 퍼서 우리 손에 쥐여 주는 할머니들 얼굴에는 모든 걸 품은 편안함이 깃들어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 씨앗이 우리 안에 자라길 희망한다.오도 님 | 홍성 씨앗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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