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특집] 사내는 검을 들었다
2018.10.10   조회수 : 1,494    댓글 : 4개

4년 전, 가족의 생계 수단이자 나 자신의 존재 이유인 전파상을 접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곧 일흔인데 이제 무엇을 하나?’ 잦은 상념으로 의욕이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만 야금야금 쌓였다. ‘이래선 안 돼. 나답지 않아!’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오랜만에 청소도 하고 공원을 걸었다. 바쁘게 움직이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나 곧 ‘운동하면 뭐해? 기분 좋으면 뭐하냐고?’라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내게 주어진 삶의 소중한 시간을 좌절과 우울로 흘려보냈다. 어느 날, 독립해 사는 딸이 전화로 뜻밖의 말을 했다. 요즘 ‘소설’을 쓴단다. “아빠, 처음엔 생각이 많아서 잘 안 됐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의외로 잘 써져. 도입부를 메일로 보냈으니까 수정해 봐!” 설레는 마음으로 딸의 글을 읽었다. 내가 문학에 관심 있는 걸 아는 딸은 종종 “아빠도 글 한번 써 봐. 나보다 책을 많이 읽었잖아.”라고 말하곤 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 이웃이나 친지 집에 가면 으레 책꽂이에 먼저 눈이 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처럼 결말이 안타까운 명작을 읽은 뒤에는 내 멋대로 그 이후를 생각해 보았다. 스칼렛 오하라가 매정하게 떠난 레트 버틀러를 찾아가 사랑을 구한다든지, 포로가 된 조던이 탈출에 성공해 마리아를 다시 만난다든지. 행복한 결말을 찾아 상상의 나래를 폈다.

 

명작의 속편을 상상하는 건 얼마든지 하겠으나, 초등학교와 라디오 기술 학원 학력이 전부인 내게 소설 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노트북 자판에 손가락을 올려 보았다. 그러곤 딸의 글을 수정했다. 한 문장, 한 문단……. “이럴 수가. 글이 써지네!” 글쓰기라곤 학교 작문 숙제밖에 해 본 적 없는 나는 희열을 느꼈다.

 

읽기와 수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멋대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었다. 마치 내가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유치한 글이라도 나의 혼이 스며든 생물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저 시계 왜 저래?” 벽시계를 쳐다본 나는 순간 고장 난줄 알았다. 휴대 전화까지 확인하고서야 내가 여섯 시간 동안 의자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 불과 몇 쪽의 글을 썼을 뿐인데 말이다. “오, 이런!” 소름이 쫙 돋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대체 이게 뭔 일이다냐?”

 

소설을 쓰는 것은 자신이 그리려는 ‘경이로운 세계’에 스스로 들어가는 일인 걸 깨달았다. 그곳의 대기를 호흡하며 함께 얘기하고, 은밀함을 엿보기도 하고, 때론 슬픔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면서.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뿐 아니라 글을 쓰면 뻑뻑하게 녹슨 두뇌가 정비한 엔진처럼 부드럽게 돌아간다는 사실도 알았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어떻게 이런 단어와 서정적 묘사를 떠올렸을까?’ 싶었는데, 그건 오래전 읽은 책들 덕분이었다. 그때 얻은 표현력은 없어진 게 아니었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 녹슬었을 뿐.

 

창작의 기본 형식도 모르지만, 내 글이 활자화될 것도 아닌데 아무렴 어떤가. 그저 살아오면서 축적한 경험을 소재로 이야기를 지어 보고 싶다.

 

“사내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검을 빼 들었다. 살비듬이 희끗희끗한 마른 팔뚝에 검푸른 핏줄이 얼기설기 불거진다. 말은 당장 튀어 나갈 듯 검은 갈기를 부르르 떤다. 사내는 칼끝을 앞으로 하고, 말 옆구리에 박차를 힘껏 가했다. 그리고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풍차를 향해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이찬수 님 | 경기도 성남시

 

     

댓글 쓰기

댓글 (4)

임연미
2018.10.15
글 읽고 힘내고 갑니다. 너무 멋있어요! 아버님 글이 다른분들에게 희망을 줄거에요.
박완숙
2018.10.21
삭제
저도 어릴적에는 책을 좋아한것 같았는데 사는게 뭔지  글읽어보니공감가내요   힘내시고  좋은글 부탁합니다 화이팅!
희망의증거
2018.10.21
멋지십니다! 힘내세요 극복잘하시구요
용접사
2018.10.21
삭제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합니다

같은 카테고리의 글들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사랑하면 변한다new
2018.12.07   조회수 : 212    댓글 : 0개
한 달여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내심 기대했다. 우리 집 강아지가얼마나 열렬하게 나를 맞아 줄지.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고요했다. ‘엄마가 얘를 데리고 산책 나갔나?’ 한데 엄마의 운동화는 그대로 있었다.걱정되는 찰나 내 방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있는 강아지가 보였다. 배낭을 내팽개치고 달려가 껴안았다. 녀석은 그제야 내 얼굴을 핥았다.우리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녀석을 데려왔다. 다른 강아지들에 치여 구석에서 떨고 있던 아이였다. 녀석은 집에 온 뒤로도 얼마간 우리 눈치를 봤다. 작은소리에도 놀라고 손님이 오면 침대 밑으로 숨었다. 그런 녀석이 이제는 내 방침대에 평온하게 누워 있다. 사랑받은 티가 줄줄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의 까슬한 털과 탁한 눈동자는 어디에도 없었다.그날 밤 엄마 옆에 누워 그 일을 말했다. 엄마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내가 서열 4위로 밀려난 거라고 했다.“너 없는 사이에 네 방도 걔 줬어.”“너무하네.”“처음엔 털도 지저분하고 얼굴은 시꺼먼 게 못생겨 보였는데 정붙이고 나니까사랑스럽기만 하더라.”나와 아빠는 귀여워할 줄만 알았지, 실질적으로 녀석을키운 건 엄마였다. 하지만 매일 안고, 산책시키고, 씻기면서도 엄마가 녀석에게곁을 내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상처 때문인듯했다. 그런 엄마가 녀석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동물농장〉 보면 어쩜 저렇게 생겼나 싶은 개들도 나오잖아. 근데 정붙이고나면 마냥 귀엽단 말이지. 사실 사람도 그래. 우리끼리는 예쁘다, 못났다 기준을 나누지만 우리를 만든 신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예뻐 보이지 않을까?”문득 여행지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며 “이건 눈을 감았고, 이건 턱이 비뚤어지게 나왔어.” 하고 여러 장을 삭제한 게 떠올랐다. 생각이 깊어지는 밤, 녀석은 코까지 골며 우리 다리 사이에서 잠들었다.이유진 님 | 서울시 강동구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늦지 않았다new
2018.12.07   조회수 : 143    댓글 : 0개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가 서른.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다. 15년간의 공백으로 힘든 것은 형편없이 떨어진 나의 바둑 실력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시선이 더 따가웠다. “그 나이에 실력이 늘겠느냐.” “어린애들 머리를 따라갈 수 없다.” “프로 되는 게 만만해 보이냐.” 등등. 내가 이겨야 하는상대는 띠동갑보다 훨씬 어린 십 대 초중반의 아이들. 그들은 짓궂게도 나를‘이모’라고 불렀다.하루는 세계 어린이 바둑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아이와 마주 앉았다. 그아이는 언론의 주목은 물론 도장에서도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내가 유난히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지금 이 시대, 이 자리의 주인공이고 나는 주변인이었다. 그 바둑은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 지고 말았다.대국 후 감상을 나누는 시간, 나는 멋쩍어하며 한두 마디 건넸지만 아이는듣는 둥 마는 둥 다른 곳을 보았다. 서둘러 돌을 담았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문을 잠그고 울었다. 실은 아이가 우승한 대회에서 정확히 18년 전 나도 우승을 차지했다. 나 역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당시의 주인공이었다.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위치는 너무나 초라해져 있었다.도장을 그만두고 대만으로 떠났다. 나를 모르는 곳에서 오로지 바둑에만집중하고 싶었다. 그곳 사람들은 나를 모르기에 오히려 있는 그대로 봐 주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나의 바둑은 아직 열여섯 살’이라고. 나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자신감도 장착했다. 한국에 돌아오자 거짓말처럼 나의 바둑 실력은 십 대 아이들 못지않게 성장했다. 그리고지난 3월, 꿈에 그리던 프로 기사가 되었다.숨 막히는 도장, 그곳의 주인공은 그 아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 도은교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나는 결코 내가 아니다. 사람은외부 시선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본인이 원하는 모습에 더가까워질 수 있다. 서른네 살에 꿈을 이룬 요즘, 이제야 비로소 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도은교 님 | 바둑 기사
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결혼하고 싶은 남자new
2018.12.07   조회수 : 143    댓글 : 0개
“팔이 아직도 안 좋니?”“괜찮아. 걱정하지 마.”남동생의 팔은 파스로 가득하다. 그래도 늘 괜찮다고만 한다. 기특하면서도 안쓰럽다.우리 삼 남매는 어려서 아빠를 병으로 잃었다. 하여 엄마가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나는 동생이 엄마를 찾으며 보챌 때마다 말했다.“엄마는 밤에야 오신다고. 울어 봤자 소용없어!”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동생은 사춘기 때 방황하며 온 가족을 힘들게 했다.하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하면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내를 위하고 두 아들을 사랑하는 성실한 가장으로 변한 것이다.동생은 휴대 전화 대리점을 하며 열심히 일했다. 한데 올케가 친정집을 돕다가 파산하고 말았다. 내가 동생이라면 이혼하든가 장인, 장모에게 따져 물을 텐데 남동생은 그러지않았다.“집사람도 불쌍하잖아. 어차피 같이 살 거 굳이 따져서 뭐해.”남동생이 바보 같았다. 하나 달리 생각해 보니 든든하고 사랑 많은 가장이었다.불행은 함께 온다 했던가. 파산한 것도 모자라 휴대 전화 대리점까지 주변 상가의 몰락으로 문을 닫았다. 남동생 가족은 거리에 나앉을 형편이 되고 말았다.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남동생 가족을 우리 집으로 불러들였다. 겨우 숨을 돌린 남동생은 택배 회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일하던 중 물건이 넘어지는 바람에 크게 다쳐 돈을 벌기는커녕 병원비까지 보태야 했다.아!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술에 빠져 팔자타령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동생은 아니었다. 더 꼿꼿하게 불행의 파도를 요리조리 넘어갔다. 언젠가 한 번은 어떻게 그리 매사에긍정적인지 물었다.“나에겐 보물이 있잖아. 사랑하는아내, 두 아들 그리고 엄마, 비빌언덕이 되어 주는 누나까지!하하.”남동생은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몇 년간 무사고로 일하다 드디어 삼 년 전, 개인택시를마련했다. 차를 뽑은 날, 어찌나 좋아하던지…….이제 큰 조카는 대학교 1학년, 작은 조카는 중학교 3학년이다. 여전히 돈 들어갈 데가 많지만, 동생은 파스를 달고 살면서도 늘 웃는다. 새벽녘에야 들어와 밥을 먹는 탓에 나날이배가 나오는 모습이 안타깝다. 비빌 언덕으로서 남동생 운동비쯤은 또 투자해 줘야겠다.가끔 이런 남편과 아빠를 둔 올케와 조카들이 부럽다. 남동생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다시 태어나면 너 같은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좋은 생각이야. 근데 쉽지 않을걸. 전생에 나라를 세 번 정도는 구해야 하지 않을까?”남동생의 답장이 정답이다.이경숙 님(가명) | 서울시 강서구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편지 소년new
2018.12.07   조회수 : 122    댓글 : 0개
뒷집 할머니가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온다. 서울 사는 아들에게서 기다리던편지가 왔나 보다. 눈꼽쟁이 창 너머로 기척을 살피던 외할머니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선다. 남의 집 속 사정을 낱낱이 엿듣지 않으려는 배려다. 외할머니는 어린 손주를 대견해하면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잘 읽어 드리라는 당부를 잊지않는다.문맹률이 높은 시절이긴 하였으나 마을 아이들을 제치고 내가 할머니들의편지 대독을 도맡은 것은 도회에서 온 아이였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영특한 아이 대접을 받았다. 나는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온 신경을 집중하는 할머니들 앞에서 으쓱해하며 제법 어른스러운 자세로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대개 ‘부모님 전상서’로 시작하는 편지들을 읽다 보면 자주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가령 “어머니 아버지 저희는 잘 있으니 아무걱정 마시고 건강하게들 지내고 계십시오.”같은 지극히 밝은 문장에서 난데없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 없다. 아이 주제에 어른을 달래는 것이예의도 아닌 것 같아서 낭독을 멈추고 따라울길 몇 번이었던가. 알 수 없는 세상일과무엇인지 모를 서러움에 시작된 내 울음이 그치질 않고 거의 통곡에 가까워지면 이번에는 할머니들이 나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자꾸 읽다 보니 요령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였다. 나는 어느새 물외 꼭지처럼쓴 얘기는 살짝 눙치고, 잘 익은 가지 속처럼 단 얘기들은 제법 곰살맞게 낭랑한 낭송 조로 할머니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을 줄도 알았다.“오매, 그렸구나. 고놈의 자석이 밥이나 굶지 않는지 모르겄다. 뜨신 밥 먹고살면 거기가 고향인 것이지, 안 그러냐~잉?”할머니들의 추임새가 따르면 편지글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가락에실려 영락없는 판소리 사설 조를 띠었다. 중요한 어느 대목에서는 부러 목이탄다는 듯 뜸을 들이면서 말이다. 그러면 냉큼 사이다나 사탕을 대령시킬 수도있었다.편지 읽기가 끝나면 할머니들은 언제나 ‘우리 대추리댁 손주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입이 무거운 아이’라고 덕담인지 당부인지 모를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결코 입이 무거운 아이가 아니었기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여간 심란한것이 아니었다. 좋은 일은 좀 널리 알려도 좋지 않을까 해서 마을 회관에서 아이들과 놀 때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무슨 속보라도 전하듯이 뉴스 보도를 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 아이들을 통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소식이 알려졌다.어쨌든 나는 마을 할머니들의 집안 대소사를 낱낱이 꿰뚫고 있는 아이로서늘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할머니들은 장에 다녀오다가도 길에서 노는 내가 보이면 장바구니에서 과일을 꺼내 주기도, 방학이 끝날 때쯤 해선 닭을 잡아 주기도 하였다.초등학교 고학년에 이르렀을 땐 편지 대독이 대필로 발전했다. 전화기가 귀한 시절 답장의 위력은 실로 상상을 초월할 만한 것이었다. 편지를 읽을 때의진상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선물을 아삭거리면서 나는 할머니들이 불러 주는 말을 글로 옮겨 왔다. 그때 마치 무슨 신동이라도 난 듯 찬탄을 거듭하던 할머니들의 경이에 찬 모습을 잊을 수 없다.그러나 곧 말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여의치 않음을 알았다. 가령 날씨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부터 식은땀이 흘렀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뉘앙스를 고정된 문자 용기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것이 내게는 거의 불가능한것처럼 보였다.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소 판 이야기를 전하면서 고향 들녘밀밭을 한숨처럼 핥고 가는 바람과 불가뭄에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에 대해선쓸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할머니들의말을 글로 잘 옮겨 올 수 있을까. 편지로부터 시작한 나의 독서와 글쓰기는 그때의 질문으로 끝없이 회귀한다.오랜만에 고향을 찾았을 때 그 옛날의 할머니 중 한 분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자네가 편지 읽던 대추리댁 손주 아닌가.”많은 분이 세상을 떠났지만 손을 잡아 주는 할머니의 눈빛 속에서 나는 그 옛날의 할머니들과 편지 읽어 주던 소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이제는 아무도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고 쓸쓸해하던 할머니와 소년을 다시불러 본다.손택수 님 | 시인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씨앗 마실
2018.11.09   조회수 : 730    댓글 : 1개
12월이 되면 마을 사람 몇몇이 모여 홍동면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을 만난다. 우리는 이 일을 ‘씨앗 마실’이라고 부른다. 겨울이라 농사일은 없지만, 할머니들의 손은 여전히 분주하다. 일 년 내내 농사지은 콩이나 깨, 시금치 씨앗 등을 체로 치고, 키질로 쭉정이를 날려 튼실한 종자를 고른다.그러기를 수십 년,같은 일의 반복이지만 할머니들에게는 지나온 역사를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씨앗 마실 나간 첫해, 처음 만난 할머니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일흔셋이던 할머니는 스물다섯 살에 시집왔다고 했다. 그때 가지고 온 ‘이팥’이란 토종팥을 48년째 씨로 심고 있었다. 그 긴 세월을 이어 온 까닭이 궁금해 물으니,“지금 것은 맛이 없어.”라고 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어릴 적 친정 엄마가 해 준 팥죽이며 팥빵 맛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키우는 것이다. 시집올 때씨앗을 가져온 이유를 물었다.“지금이야 텔레비전이며 냉장고를 혼수로 해 가지만, 옛날엔 딸이 시집간다고 하면 그해 농사지은 것 중에 제일 좋은 씨앗들만 골라서, 옷 한 벌과 함께옷장 속에 넣어 주셨지. 그게 다야.”또 다른 할머니는 열여덟 살에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등 떠밀려 시집왔다. 가마를 타고 이틀이 걸려 왔다고 하니, 꽤 부잣집에서 시집온 것이 분명했다. 그때 가져온 씨앗이 ‘청태’라 부르는 푸른 메주콩이다. 동네에서 청태는처음 봐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할머니에게도 아직까지 이 씨앗으로 농사짓는 이유를 물었다.“우리 동네에는 시집갈 때 친정에서 가져온 씨앗을 밑지면(씨앗 농사를 잘못 지어 다 없어지면) 친정과 연이 끊긴다는 말이 전해지거든.”나는 그제야 비로소 여든 넘은 할머니 중 유독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는 분이많은 이유를 알았다.열여덟, 스물에 시집온 할머니들의 씨앗에는 그분들의 역사와 애환, 희망이고스란히 담겼다. 그것들이 지금의 우리를 지탱해 주는지도 모른다. 그 귀한씨앗을 마음껏 퍼서 우리 손에 쥐여 주는 할머니들 얼굴에는 모든 걸 품은 편안함이 깃들어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 씨앗이 우리 안에 자라길 희망한다.오도 님 | 홍성 씨앗 도서관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