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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그 많은 노심초사 덕에

한창 꽃이 핀 시절에는 날이 추웠다. 아카시아꽃이 추운 날씨를 못 견디고 너무 빨리 져 버린 통에 꿀벌 치는 사람들이 울상이었다. 봄 같지 않은 봄 때문에 즐겁지가 않았다. 짧은 장마 끝에 타는 가뭄이 너무 길었다. 한낮엔 맨 흙바닥에 발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세상천지가 펄펄 끓었다. 여름은 너무 여름 같아 괴로웠다. 일망무제로 높고 넓어진 가을 하늘을 기대했건만 장마 같은 장대비가 하루가 멀다 하고 퍼붓는 통에 온 집 안이 눅눅했다. 눅눅한 방바닥에 개미들이 떼 지어 출몰했다. 개미를 쓸어 내며 울고 싶어졌다. 날씨만 놓고 보면 올해는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리 행복하지 못한 날들이 이어진 것 같다.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뚝 그친 어느 날을 틈타 기습적으로 김장 무씨를 넣고 김장 배추 모종을 했다. 씨와 모종들은 비가 너무 안 와도, 너무 많이 와도 안 되는지라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건지, 안 오기를 바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비는 어김없이 장대비로 쏟아졌다. 무씨는 썩을 수도 있고 배추 모종은 그 뿌리가 일어나서 해 나는 어느 날엔 다 말라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비 그친 어느 날 무씨는 딱 내가 심은 그만큼씩 돋아나고 배추 모종은 가늘디가는 실뿌리를 착근하게 땅에 내리고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을 품새로 늠름하다. 왈칵 눈물이 날 지경이다.

 

시골에 이사 와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씨앗을 땅에 넣을 때마다 사실은 그런 비슷한 노심초사를 했다. 이 작은 씨앗에서, 지금은 어떤 형태도 상상할 수 없는 조그만 먼지 혹은 부스러기 같은 물체에서 어떻게 그 풍성한 초록 잎이, 그 장대한 줄기가, 그 튼실한 열매가 생겨날쏘냐, 긴가민가해진 것이다. 의심이라면 의심이고 불안이라면 불안인 그런 심사는 그 조그만 씨앗들에서 싹이 터 흙 위로 삐죽삐죽 올라와 줄 때에야 눈 녹듯 사라진다. 그동안에 나는 오늘은 싹이 텄나, 안 텄나, 자고 일어나면 밭으로 내달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모든 씨앗은 딱 내가 뿌린 만큼 올라왔다. 올라와서 벌레나 새한테 제 몸을 내준 것 말고는 언제나 나의 씨앗들은 난 만큼 정확하게 커 주었다. 그러고는 햇빛과 바람과 물의 힘만으로도 내게 천둥 같은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내가 보탠 것은 오직 노심초사뿐이었는데도.

 

시장에 가서 깜짝 놀랐다. 지난한 봄과 여름을 생각하면 시장에 흠집 하나 없는 노오란 배, 윤기 흐르는 붉은 사과, 탱글탱글한 포도가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싶어서다. 나는 지레 포기했다. 올해는 과일 같은 것은 먹어 볼 수 없을 거라고. 그러나 시장에는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똑같이 과일 장수는 과일을 팔고 채소 장수는 채소를 팔았다. 농부들은 어떻게 저 채소들을, 저 과일들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을까.

 

나는 이따금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놀란다. 아, 저 많은 아이를, 저 아이들만큼이나 많은 부모가 기르고 있구나, 부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기르고 있겠구나. 그리고 나도, 내 동무도, 지금의 어른도, 그 어른의 어른도 다 그렇게 누군가의 수고로 길러져서 아이가 어른이 되었구나. 새삼스러워져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올 때가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코끼리도, 원숭이도 그 어미 혹은 가족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어른이 된다. 그 어미들의 노심초사의 나날이 아기 코끼리, 아기 원숭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것이다.

 

시장에 나온 저 채소, 저 과일 하나하나가 다 농부의 노심초사에 다름 아님을 알겠다. 내가 농사를 지어 보니 알겠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내가 말썽을 부리면 나중에 꼭 너 같은 자식을 낳아 봐야 당신 속을 알 거라는 말씀을 노상했다. 그때는 그 말이 듣기 싫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아이가 속을 상하게 하면 나도 모르게 우리 어머니의 그 말씀이 내 입에서도 나왔다. 어머니 말씀대로 예전의 나처럼 속을 썩이는 자식을 키워 보니 알겠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절로 크는 건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세상에 모든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결국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의 끊임없는 노심초사 덕분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노심초사가 아닌들 이 가을에 저 아름다운 과일들을 어떻게 맛 볼 것이며 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어디 가서 들을 것인가. 사정이 그러하니 과일 사는 사람은 흠집 난 과일이라도 너무 타박하지 말고, 어린 사람은 어른의 잔소리에도 좀 너그러워지기를 바라는 게 그리 무리한 바람은 아닐것이다.

 

공선옥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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