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좋은님 에세이] 빚
2018.09.07   조회수 : 778    댓글 : 1개

허허이제 용돈 보내는 재미 없이 무슨 낙으로 사노.” 첫 월급으로 부모님에게 내의를 선물했다아버지는 취업한 나를 대견해했다.

 

고교 시절 집 떠나 자취할 때부터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받았다날짜나 액수가 정해진 건 아니었다돈이 떨어져 전화하면 기다렸다는 듯 보내 주었다농사일은 고정 수입이 없는 걸 아는지라 받을 적마다 죄송했다어려운 형편에 대학까지 보내 준 부모님에게 늘 빚진 마음이었다빨리 졸업해서 그 신세를 면하고 싶었다. 

 

직장을 얻자 부모님에게 손 벌릴 일은 없겠다 싶었다하지만 막상 결혼하려니 전셋집 얻느라 도움 받아야 했다몇 번의 이사 끝에 어렵게 집을 장만했다부모님은 아들의 새집에 기쁜 마음으로 다녀갔다며칠 후 전화가 왔다. “아범아돈 보냈다아직 빚이 많이 남았제?” 대출금이 큰 걸 알고 마음이 쓰였단다부모님 돈이 은행 빚보다 더 무거웠다. 

 

얼른 부모님 빚부터 갚으리라 다짐하고 열심히 살았다그러나 쉽지 않았다돈이 조금 모인다 싶으면 은행 이자가 먼저 빠져 나갔다그러다 둘째가 태어났다늘어난 살림살이에 더 넓은 집으로 옮기면서 칠 년이 흘렀다. 

 

부모님은 오랜만에 들른 아들 내외를 반갑게 맞았다팔순을 앞둔 아버지는 그새 더 수척해졌다칠칠찮은 아들 탓인 듯해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저녁상을 물리고 부모님과 마주 앉았다나는 아버지 앞으로 통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고?” “저 이제 빚 없어요다 갚았어요.” 한사코 돌려주려는 부모님과 실랑이한 끝에 애써 건네고 고향 집을 나섰다마음이 홀가분했다. 

 

배명섭 님 대구시 수성구

 

     

댓글 쓰기

댓글 (1)

이석진
2018.09.14
삭제
아주 홀가분 했겠습니다

같은 카테고리의 글들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행운
2018.09.07   조회수 : 946    댓글 : 1개
늘 반항아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학창 시절.나는 부모님,선생님,친구까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이였다.어릴 적부터 깊어진 부모님과의 갈등의 골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선생님들의 평가도 한결같았다. “길들여지지 않으려 하고,딱히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없는 아이.”방황을 거듭하다 일본 지휘자‘오자와 세이지’가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암보(악보를 외워 기억함)로 지휘하는 영상을 보았다.가슴이 뛰었다.인생에서 처음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자존감이 낮은 시기였던 탓에 내가 감히 지휘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단지 관련 전공으로 대학을 다닐 수만 있다면 행복할듯했다.그러나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아버지는 여자아이에게 지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크게 반대했고,갈등은 더욱 심해졌다.나는 서러움이 북받쳐 집을 나가고야 말았다.얼마간 친구에게 신세 지다 돌아오니 부모님은 비로소 나를 속박하길 포기한 듯했다.도전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몰래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떨어지더라도 어차피 아무도 모르겠지.’이런 생각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화성법(작곡 또는 지휘과 입시에서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과목 중 하나)책을 펴며 가슴이 벅차올랐고 난생처음 느껴 보는 설렘에 푹 빠졌다.스스로 나의 길을 찾고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희열을 맛보게 해 주었다.스무 살,내 인생의 전환점은 그렇게 불현듯 찾아왔다.음악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지휘자로 살아간다는 것.같은 분야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으며 무리 없이 성취를 이루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나 역시 주변에 나름 긍정적이고 열심히 사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으니 늘 든든한 지지가 함께하는 사람으로 보이리라.하지만 부모님은 소위‘엘리트 학생’을 접하는 분들이고,당신들의 가르침과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훌륭한 제자들과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소심했던 나는 스펀지는커녕 부모님의 힐난과 비교에 늘 상처받았다.그러던 내가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설렘을 느낀 것,그로 인해 커다란 전환점을 맞은 건 정말이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진솔 님|대구MBC(엠비시)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아빠의 청춘
2018.09.07   조회수 : 1,413    댓글 : 6개
부모님은 내가 대학교1학년 때 이혼했다.우리 사 남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일가친척이 모이는 명절이면 엄마의 빈자리는 더욱 컸다.친척들은 우리 눈치를 살피며‘이혼’이나‘엄마’라는 말을 조심스러워했다.우리 때문인가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가족이 티브이를 보다가도‘이혼’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괜히 서로 멋쩍어 슬쩍 채널을 돌리곤 했다.아빠의 어깨도 한 뼘쯤 더 처져 보였다.어느 명절,친척들과 노래방에 갔다.가족별로 노래하는데,첫째 작은아버지가 작은어머니와 노래를 불렀다.그리고 둘째 작은아버지 내외도 마이크를 잡았다.부부끼리 부르기로 정한 것도 아니었는데.사촌들이 어리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부를 만한 노래가 없었다.우리 집 차례가 왔다.“나는 뭘 불러야 하나.”아빠는 혼자 부르기 어색한 듯 책을 뒤적거렸다.“아빠,제가 부를게요!”그때 큰오빠가 벌떡 일어서더니 기기에 번호를 눌렀다.우리 남매들은 어릴 적부터 워낙 숫기가 없었다.어디 나가 노래 부르는 건 쥐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큰오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뭘 부르려고 그러나.’온 가족이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제목이 크게 떴다.〈아빠의 청춘〉.아빠는 놀란 눈치였다.전주가 흐르고 아빠를 위한 큰아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후렴에서 큰오빠의 목소리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원더풀,원더풀,아빠의 청춘.브라보!브라보!아빠의 인생.”2절이 시작하자 아빠는 큰오빠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함께 불렀다.노래가 끝나고 온 가족의 박수가 이어졌다.나는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았다.그간 아빠를 보며 마음이 무척 아픈 터였다.그 뒤로〈아빠의 청춘〉은 우리의 애창곡이 되었다.가족이 모이면 어김없이 이 노래를 부른다.그날 이후,서로 표현하지 못했던 무거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진 듯했다.아빠의 미안함도,아빠가 힘을 내길 바라는 우리 마음도 그 노래로 전해졌다.언제나‘청춘’처럼,건강하게‘원더풀’할 아빠의 삶을 응원한다.김소연 님|경기도 남양주시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버스커 버스커
2018.09.07   조회수 : 1,482    댓글 : 1개
주말에 종종 산에 오른다.산이 가깝고 많다.불암산은 집에서5분 거리고 수락산은10분 거리다.베란다에서 내다보면 사패산과 도봉산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산에 안 오를 수가 없다.나는 노원구 중계동에서20년째 산다.산에 갈 때마다 놀란다.참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른다.매번 놀라면서 매번 새롭다.그 또한 산행의 매력이다.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스틱을 짚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어쩐지 엊그제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한 지친 사람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다른 사람들인가?아닐 텐데,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기다린 그 사람들이 맞을 텐데 훨씬 웃음이 많고 목소리가 활기차다.산에 오르면 누구나 좀 달라지는 걸까.나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여간해서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않는 나도 산에서라면 예외다.빤한 걸 일부러 묻고 빤한 대답을 들으며 즐거워한다. “비봉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거의 다 왔어요,힘내세요.”말하자면 이런 질문과 대답인데,오르고 올라도 비봉이 멀기만 한때가 있다.속은 셈인데도 자꾸 웃음만 나온다.없는 오지랖을 피운 적도 있다.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기 전까지 펼쳐지는 완만한 산책로.그곳에는 계곡물이 있고 공중화장실도 있고 때로는 찰옥수수와 쑥떡을 파는 이들이 있다.도봉 서원터에서 천축사 가는 길로 접어들어7분쯤 걸었던가.그곳에 허름한 옷을 걸친 소프라노 색소폰‘버스커(거리에서 노래나 연주를 하는 예술가)’가 있었다.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긴 했어도 꽤나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분이었다.그에게 가당찮은 오지랖을 떨었다.그를 그날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천축사 방향으로 오를 때 가끔 보았다.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무슨 곡인가를 하염없이 연주했다.거의 외국곡이었는데 내가 어쩌다 노래방에서 부르는〈내 사랑 내 곁에〉라든가〈천년의 사랑〉같은 곡이 나오면 발걸음을 멈추고 끝까지 들었다.그러다 하루는 그에게 다가갔다.답답해서 그랬다.그의 발치에 놓인 색소폰 케이스가 그야말로 발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뚜껑 열린 케이스에는 등산객이 던져 준 천 원짜리 두 장과 몇 개의 동전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까지 다가와서 돈을 건네지 않아요.좀 더 사람들이 다니는 쪽으로 케이스를 내어 놓아야겠어요.’물론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그에게 목례로만 양해를 구하고 색소폰 케이스를 행인들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옮겼다.아니나 다를까,옮기자마자 두 행인이 색소폰 케이스에 돈을 넣었다.나는 그를 향해 보란 듯 미소 지었다.깊게 눌러쓴 모자 그늘 속에서 그의 눈도 웃고 있었다.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었다.두어 달쯤 뒤에 다시 천축사에 올랐다.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연주에 열중했다.나는 연주보다는 색소폰 케이스에 먼저 눈이 갔다.그럴 수밖에 없었다.색소폰 케이스가 다시 그의 발치에 놓여 있었으니까.그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케니 지의〈러빙 유〉를 연주했다.케이스 안은 동전 몇 닢으로 다시 초라해져 있었다.나로선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색소폰 케이스를 다시 행인들 쪽으로 밀어 놓을 만큼 나의 오지랖은 왕성하지 못했다.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은 채 흘끗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쥐고 있는 몇 푼의 돈을 그의 색소폰 케이스에 슬그머니 떨어뜨렸다.그는 그날과 똑같은 눈웃음을 나에게 지어 주었다.〈러빙 유〉는 맑은 계곡물소리와 어우러졌다.내 거동을 누군가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노년의 버스커 곁을 물러나고서야 알았다.소나무 그늘 바위에 앉아〈러빙 유〉에 귀를 기울이던 중년 여성 등산객이 나에게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색소폰 케이스를 행인들 가까이 내놓았죠?”“어떻게 아셨죠?”내가 물었다.“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니까요.그게 훨씬 나아 보여서.”“그런데 어째서 저분은 다시 발치로 끌어다 놓았을까요.”“저도 그게 알고 싶어 이곳에서 자주 연주를 들어요.그리고 이젠 왠지 알 것 같기도 하고요.”“왜일까요?”“연주자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던 것도 아니고,다만 제 생각일 뿐이니까,음,굳이 말씀드리기가…….”“자주 와서 들으면 저에게도 생각과 느낌 같은 게 생기겠군요.”내가 말했다.“보세요,오늘 연주도 흐트러짐이 없어요.전혀 흔들리지 않아요.”그녀가 말했다.구효서 님|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산울림 법칙
2018.08.08   조회수 : 2,359    댓글 : 3개
나의 애장품 중 하나는 휴지처럼 돌돌 말린 먼지 청소용 테이프다. 그걸 들고 어찌나 찍찍거리고 다녔는지,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와 쥐라도 있는 건 아닌지 묻기도 했다.그렇다. 나의 취미이자 특기는 청소. 대학 시절부터 시작해 꽤 오랜 기간 혼자 자취할 때도 내 집은 언제나 손님 방문 오 분 전 상황이었다.결혼 후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마치 모델 하우스 같다며 놀라워했다. 청소예찬론자인 나는 그저 칭찬으로 받아들이며, ‘이렇게 깔끔하게 사니 얼마나좋아? 우리 남편은 복도 많지!’라는 생각에 의심이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싫은 소리 잘 안 하는 남편이 속에서 뭔가 욱하고 올라온 모양이다.“우리 집인데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어?”나도 마음이 상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썼다. 한데 돌아앉아 생각하니 청소는 깔끔한 걸 좋아하는 내가 선택한 즐거운 행위였다. 그럼에도 신나게 청소하다가 동참하지 않는 남편을 발견하면 짜증이 쑥 올라왔다. ‘혼자 사는 집도 아닌데 왜 나만 이러고 있나?’ 여지없이 얼굴과 말투에 마음이 묻어났다.“내가 청소부야? 같이 안 할 거면 저리 좀 비켜!”그뿐인가, 남편이 청소 수준을 맞춰 주기를 기대하며 한두 마디씩 들이밀곤했다.“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정리는 해야지?”“샤워하고 나면 욕실 물기 정리는 기본 아닌가?”“현관에 들어오기 전에 신발은 탁탁 털면 좋겠지?”내 얼굴에 묻은 밥풀을 나만 몰랐다. 청소는 좋은 거라며 나만의 취향을 남편에게 강요한 건 아닐까? 혹은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할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지나치진 않았나? 스스로에게 종종 묻는다.세상의 변하지 않는 이치 중 ‘산울림 법칙’이 있다. “웬수야!” 하고 소리 지르면 반드시 “웬수야!” 하고, “사랑해!” 하면 “사랑해!” 하고 돌아온다. 내가 자주듣는 말은 무엇인가?박혜은 님 |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나물 할머니
2018.08.08   조회수 : 2,606    댓글 : 3개
아이가 두 돌 무렵 친정 엄마가 입원했다. 엄마 성격이 깐깐하기도 했으나 간병인을 둘 형편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미혼인 언니가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엄마를 돌보기로 했다.병원은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 아이와 지하철을 타고 오간 지 육 개월 즈음이었다.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는지 오전부터 칭얼댔다. “장모님도 웬만하면간병인을 쓰시지, 고집도 참. 애도 당신도 고생이잖아.” 남편은 소홀해지는 살림과 육아에 화를 내며 출근했다. 엄마도 미안한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이제 혼자서 움직이는데 귀찮게 자꾸 오고 그려!” “알았어, 내일부터 안 올 테니까 언니한테 병 수발 다 들라고 해!”불편한 마음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후의 지하철은 한산했다. 영등포역에서 한 할머니가 짐수레를 끌고 우리 옆자리에 앉았다. “아기가 참 예쁘네,몇 살이누?” 백발의 고운 할머니는 박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아……. 이제 두돌 지났어요.” 엄마 때문에 지친 나는 건성으로 답했다. “근데 뭔 일 있어? 애기 엄마 얼굴이 슬퍼 보이네.” “친정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참았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나는 영등포에서 나물을 팔아. 오늘은 날도 덥고 해서 일찍 파장했어. 돈안 받을 테니 집에 가서 청양 고추 숭숭 썰어 넣고 된장찌개 끓여 먹어.” 할머니가 건넨 봉지에는 호박과 청양 고추 한 움큼이 들었다. 낡은 수레에 가득한,팔지 못한 채소들이 눈에 밟혀 한사코 거절했으나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얼마라도 드리려고 고민하는 찰나,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할머니,호박잎 맛있어 보이는데 얼마예요? 우리 영감이 좋아하는데 잘됐네.” 그러자맞은편 아주머니도 얘기했다. “그 청양 고추랑 오이 섞어서 이천 원어치만 주세요.” 그렇게 반짝 장이 섰고 할머니의 채소는 금세 동났다. “내가 오늘 복 있는 애기 엄마 만나서 횡재했네. 참말로 고마워.”그로부터 석 달 후 엄마는 건강히 퇴원했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 말대로 내가 복덩이여서 친정 엄마도 고비를 잘 넘기고, 우리 가족도 화목하게 산다고믿는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건강히 지내세요.”김택현 님 | 경기도 시흥시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