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햇살마루] 버스커 버스커
2018.09.07   조회수 : 2,099    댓글 : 2개

주말에 종종 산에 오른다산이 가깝고 많다불암산은 집에서 5분 거리고 수락산은 10분 거리다베란다에서 내다보면 사패산과 도봉산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산에 안 오를 수가 없다나는 노원구 중계동에서 20년째 산다. 

 

산에 갈 때마다 놀란다참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른다매번 놀라면서 매번 새롭다그 또한 산행의 매력이다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스틱을 짚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어쩐지 엊그제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한 지친 사람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다른 사람들인가아닐 텐데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기다린 그 사람들이 맞을 텐데 훨씬 웃음이 많고 목소리가 활기차다산에 오르면 누구나 좀 달라지는 걸까. 

 

나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여간해서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않는 나도 산에서라면 예외다빤한 걸 일부러 묻고 빤한 대답을 들으며 즐거워한다. “비봉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거의 다 왔어요힘내세요.” 말하자면 이런 질문과 대답인데오르고 올라도 비봉이 멀기만 한때가 있다속은 셈인데도 자꾸 웃음만 나온다. 

 

없는 오지랖을 피운 적도 있다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기 전까지 펼쳐지는 완만한 산책로그곳에는 계곡물이 있고 공중화장실도 있고 때로는 찰옥수수와 쑥떡을 파는 이들이 있다도봉 서원터에서 천축사 가는 길로 접어들어 7분쯤 걸었던가그곳에 허름한 옷을 걸친 소프라노 색소폰 버스커(거리에서 노래나 연주를 하는 예술가)’가 있었다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긴 했어도 꽤나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분이었다그에게 가당찮은 오지랖을 떨었다. 

 

그를 그날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천축사 방향으로 오를 때 가끔 보았다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무슨 곡인가를 하염없이 연주했다거의 외국곡이었는데 내가 어쩌다 노래방에서 부르는 내 사랑 내 곁에라든가 천년의 사랑〉 같은 곡이 나오면 발걸음을 멈추고 끝까지 들었다. 

 

그러다 하루는 그에게 다가갔다답답해서 그랬다그의 발치에 놓인 색소폰 케이스가 그야말로 발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뚜껑 열린 케이스에는 등산객이 던져 준 천 원짜리 두 장과 몇 개의 동전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까지 다가와서 돈을 건네지 않아요좀 더 사람들이 다니는 쪽으로 케이스를 내어 놓아야겠어요.’ 

 

물론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그에게 목례로만 양해를 구하고 색소폰 케이스를 행인들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옮겼다아니나 다를까옮기자마자 두 행인이 색소폰 케이스에 돈을 넣었다나는 그를 향해 보란 듯 미소 지었다깊게 눌러쓴 모자 그늘 속에서 그의 눈도 웃고 있었다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었다. 

  

두어 달쯤 뒤에 다시 천축사에 올랐다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연주에 열중했다나는 연주보다는 색소폰 케이스에 먼저 눈이 갔다그럴 수밖에 없었다색소폰 케이스가 다시 그의 발치에 놓여 있었으니까그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케니 지의 러빙 유를 연주했다케이스 안은 동전 몇 닢으로 다시 초라해져 있었다.

 

나로선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색소폰 케이스를 다시 행인들 쪽으로 밀어 놓을 만큼 나의 오지랖은 왕성하지 못했다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은 채 흘끗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쥐고 있는 몇 푼의 돈을 그의 색소폰 케이스에 슬그머니 떨어뜨렸다그는 그날과 똑같은 눈웃음을 나에게 지어 주었다러빙 유는 맑은 계곡물소리와 어우러졌다. 

 

내 거동을 누군가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노년의 버스커 곁을 물러나고서야 알았다소나무 그늘 바위에 앉아 러빙 유에 귀를 기울이던 중년 여성 등산객이 나에게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색소폰 케이스를 행인들 가까이 내놓았죠?” 

어떻게 아셨죠?” 

내가 물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니까요그게 훨씬 나아 보여서.” 

그런데 어째서 저분은 다시 발치로 끌어다 놓았을까요.” 

저도 그게 알고 싶어 이곳에서 자주 연주를 들어요그리고 이젠 왠지 알 것 같기도 하고요.” 

왜일까요?” 

연주자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던 것도 아니고다만 제 생각일 뿐이니까굳이 말씀드리기가…….” 

자주 와서 들으면 저에게도 생각과 느낌 같은 게 생기겠군요.” 

내가 말했다. 

보세요오늘 연주도 흐트러짐이 없어요전혀 흔들리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구효서 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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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김준엽
2018.09.12
삭제
이야 언블리버블

김경찬
2018.09.21
삭제
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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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만남] 씨앗 마실new
2018.11.09   조회수 : 182    댓글 :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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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조회수 : 196    댓글 : 0개
우리 집 현관문은 열쇠로 열고 잠근다. 안에서 잠글 때는 손잡이 가운데를오른쪽으로 ‘딸깍’ 돌려야 한다. 엄마는 외출할 때 문을 잠갔는지 기억나지 않아 되돌아와 확인하는 일도 있다. 서울에 사는 남동생은 그런 엄마가 걱정돼집에 올 때마다 비밀번호 잠금장치로 바꾸자고 한다. 하지만 열쇠가 크게 불편하진 않다. 가방 안에서 짤랑거리는 열쇠 소리는 정겹기도 하다.때로 이 옛날식 열쇠는 생각지 못한 것을 일깨워 준다. 내가 집에 있을 때 아빠가 외출하면 나는 재빨리 ‘딸깍’ 하고 문을 잠근다. ‘문단속했으니 걱정 말라’는 일종의 신호다. 한데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문을 잠근다. 내가 외출하면 아빠는 현관 신발장 앞까지 나와 배웅하고, 문을 닫은 뒤에도 잠그지 않고 그대로 서서 내 발소리를 듣는다.내가 계단을 다 내려가 ‘딸깍’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면 그제야 문을 잠근다.나가자마자 문 잠그는 소리가 들리면 매정하게 느껴질까 싶어서다. 늘 그렇게문 앞에 한참을 서서 배웅해 주었다.그 사실을 눈치챈 뒤부터 나는 아빠가 얼른 문을 잠그고 들어가도록 계단을빨리 내려갔다. 1층에 다다르면 일부러 발소리를 내지 않고 기다리기도 했다.‘딸깍’ 소리를 들으려고. 문 잠그는 방식 하나로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에열쇠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오늘도 계단을 다 내려갈 때까지 문 잠그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신발장 앞에 서서 딸의 발소리를 듣는 아빠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최신식 잠금장치가 달린 크고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아빠의 소박한사랑을 느낄 수 있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다.김진애 님 | 대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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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조회수 : 199    댓글 :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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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징검다리 위에 서서new
2018.11.09   조회수 : 157    댓글 : 0개
순천 시내를 지나는 동천에는 두 개의 징검다리가 있다. 두 징검다리는 일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다. “안녕.” 두 징검다리에 인사하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시작된다.상류 쪽 징검다리에는 모두 서른네 개의 디딤돌이 있다. 디딤돌은 웬만한 고인돌 크기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강을 건널 수 있다.네 번째 디딤돌 앞에 멈춰 서는 걸 좋아한다. 물봉숭아와 고마리 떼 꽃들,부평들이 어울려 자란 곳에는 물고기들이 모여 노는 작은 풀이 있다. 물고기들은 한자리에 모여 노는 공식이 있다. 머리를 모두 상류 쪽으로 향하는 것. 헤엄을 칠 때도, 잠시 멈춰 꼬리를 흔들 때도 예외가 없다. 죽은 물고기만 물살을따라 흐른다.나란히 멈춰 서서 꼬리를 흔드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언젠가 이들 모두 자신만의 샹그릴라(이상향)를 찾아 어도를 넘고댐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향해 힘차게 도약할 것이다.디딤돌에 앉아 물고기들에게 비스킷을 준다. 조금씩 가루로 뿌려 주는 것이다. 어린 물고기들은 아이처럼 과자를 좋아해 금세 모여든다. 큰 물고기들은관심 없다.종이컵의 커피도 조금 흘려보낸다. 그들 중 한 친구가 ‘인간이 마시는 이 액체의 냄새가 나쁘지는 않군.’ 하고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이 내게 있다.지난 여름날 이야기다.물고기들이랑 놀고 있는데 한 사내가 징검다리를 건너왔다. 사내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정신이 얼얼해졌다. 사내는 검은색 시각 장애자용 안경을 쓰고 있었다. 지팡이 끝에 달린 하얀 쇠붙이로 톡톡 디딤돌을 두드리며 차례로징검다리를 건넜다. 새벽녘에 내린 비로 강물은 조금 불었고 물에 한 차례 잠긴 징검다리는 미끄러웠다.달려가서 손을 잡아 주어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강을 건너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나를 지나쳤다.디딤돌을 세 개만 더 건너면 끝. 물봉숭아꽃과 고마리 떼 꽃들이 긴장하여 사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아주 짧은 순간 그가 디딤돌에서 미끄러져 물꽃들 위에 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도강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그에게 안겨 주고 싶었기에.강 건너편 도심의 낡은 2층 건물에 봉순 안마 시술소 간판이있다. 그가 일하는 직장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강을 건넌 그는 둑실 마을로 향하는 샛길로 들어섰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사는 산비탈 마을. 실명하기 전 그가 이 징검다리를 건넌 적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실명한 뒤에도 혼자 힘으로 징검다리를 건너며 지난한 현실의 꿈을이어 가는 것 아닐까.징검다리 위에 쭈그리고 앉아 강물을 본다. 여름의 어린 물고기들은 잘 자라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랐다. 길이가 새끼손가락보다 짧았는데 어느덧 하모니카만큼 길어졌다. 북국에서 온 청둥오리들이 천천히 헤엄치는 모습도 썩 보기좋다.지난 한 해 지상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세계는 분쟁의 바다다. 종교 간의 대립으로 전쟁이 이어지고 흑백 갈등, 종족 갈등, 무역 갈등, 가난한 나라와 부자나라의 갈등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한반도에 살고 있는 8천만 우리 겨레의 경우다. 70년의 불화를 털고 지금 따뜻한 평화의 손을 잡으려 한다. 지상의 인간들이 와글와글 싸움질하는 가운데 오직 우리 민족만이 싸움을 그치고 새로운 미래를향해 나가려 하는 것이다. 긍지를 지녀도 좋을 일이다.징검다리 위에 서서 물고기들의 춤을 본다. 모두 한곳을 향하여 온몸의 에너지를 모은다. 물고기들의 모습과 우리 민족의 모습이 닮았다. 혼자 힘으로징검다리를 건넌 맹인 사내의 모습도 생각한다.절망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힘으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내의 모습 속에 우리 민족이 걸어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해 본다.곽재구 님 | 시인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이별 후애(後愛)
2018.10.10   조회수 : 2,362    댓글 : 6개
주말 오후, 남편과 멀찍이 떨어져 앉아 마른 빨래를 함께 개켰다. 남편이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더라도 나에게 더 잘해 줄 걸 하고 자책하지 말기로 해요. 난 충분히다 받았으니.”나는 살짝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사이에는 다섯 식구분의 빨래 더미가 있었다. 다른 질문이나 설명 없이 가장 하고 싶은 대답만 덧붙였다. “나도 이하 동문.”대화는 짧고 담담했지만 또 깊고 다정했다. 이 대화 속에 우리 만남의 본질과 목표가 담겼다. 이별의 순간 받을 것 다 받고 줄 것 다 주었다고 이야기할수 있는 사이. 잘 만났기에 잘 이별할 수 있는 사이.모든 만남은 이별을 예비하고, 모든 이별에는 만남의 본질이 들었다. 어쩌면만남과 이별의 순환이 이토록 긴밀하기에 우리는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안녕’이라고 같은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잘하라’며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또 잘 잊고 잘 속는 데다 빨래 더미처럼 쌓인 수많은 일상의과제에 압도되어 그 소중함을 쉽게 잊는다. 이별의 지점에 도달하고 나서야 잘주지 못했음에, 잘 받지 못했음에, 그리하여 이제는 남은 마음, 남은 사랑과 홀로 남겨졌음에 가슴을 친다.이제 막 이별한 사람만큼 만남에 대한 주옥 같은 통찰을 전해 주는 사람도없는 법. 시어머니와 이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남편과의 사소한 말다툼 후 뒤틀려 차가워진 내 마음을 다시금 말랑말랑하게 적셨다.“우리가 서로에게 원한 건 그저 사랑을 주고받는 것뿐일 텐데, 남는 것은 결국 못다 준 사랑밖에 없는데,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은 시간 서로 원망하고, 오해하고,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는 데에 마음을 썼는지 몰라요.”미처 전하지 못한 남은 사랑이 회한과 자책, 미련으로 전환되는 것을 들으며, 내 안의 사랑을 차갑게 얼려 두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순간마다 마음을고쳐먹자고 결심한다. 아낌없이 주고, 받은 것을 소중히 간직하자고. 이별 후남는 사랑이 없도록.선안남 님 | 상담 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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