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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산을 타자

속이 탄다.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에 어젯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였다. 머리가 아팠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커피를 타서 산에 오르자.’ 하고 마음먹었다. 노란 커피 믹스 하나를 꺼내 들고 잠시 고민했다. ‘오랜만에 냉커피를 만들어 볼까? 아니면 평소처럼 따뜻하게 마실까?’ 결국 보온병에 뜨거운 커피를 담았다. 산 정상에서 맛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2년 전, 아버지와 의견이 맞지 않아 큰소리를 내며 다투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 동네를 정처 없이 걸었다. 그때 동네 뒷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찍 집에 가긴 싫은데 갈 곳도, 돈도 없었다. 산이나 타야겠다 작정했다. 운동과 친하지 않아서일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정상에 올랐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상쾌한 산바람으로 식히며 앉아 있었다. 어디선가 감미로운 향기가 났다. 둘러보니 아주머니 두 분이 머리를 맞대고 커피를 타는 중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과 갈색 커피가 한 컵에 섞이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봤다.

 

낌새를 알아차린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아가씨도 한 잔 타 줘요? 먹고 싶은 눈치인데. 호호.” 뜻밖의 권유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코끝을 자극하는 커피의 진한 향내와 환하게 웃으며 권하는 아주머니의 청에 못 이겨 고개를 끄덕거렸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산의 풍경을 바라보자니 들끓던 마음이 어느새 고요해졌다. 아버지와 어쩌다 대립했을까 차분히 생각했다. 결국은 내 문제였다. 아까는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 받아들여졌다. 산 덕분일까, 커피 덕분일까, 둘 다일까.

 

그날 집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러곤 가게에 가서 커피 한 상자를 샀다. 나만의 마음 치유법은 그렇게 시작됐다. 상처를 받거나 속이 상하면 커피를 타서 산에 오른다. 이 마법 같은 주문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김현숙 님 | 경남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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