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좋은생각 9월호를 소개합니다
2018.08.08   조회수 : 13,407    댓글 : 7개
창가로 가서 하늘을 2분만 쳐다보세요. 잠시 눈을 감고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만 들으세요.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좋은생각」을 한 쪽만 읽으세요. 스스로에게 쉴 틈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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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나천사
2018.08.10
기대합니다... 9월호도ㅎㅎ
한종근
201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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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을 오늘도 머리속에 깊게 각인하고 지내려합니다!!!
hmpark
201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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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고향의 산 같은 당신!
이런 시처럼 좋은생각은 늘 그리운 고향 같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향수병을 앓고 있던 어느 봄날
생일선물로 1년 구독을 해준 고향친구로 인해 알게된 좋은생각은 사진 한장도 사연 하나도 늘 그리움입니다.
멀리 있으니 구독신청도 쉽지 않아서 늘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볼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이정숙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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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이정숙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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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이정숙
2018.08.13
삭제
기다림
이정숙
2018.08.13
삭제
기대하며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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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귀룽나무 카페의 여인
2020.05.06   조회수 : 615    댓글 : 0개
손 편지를 쓰는 분이 있었다. 정확히는 엽서였다. 더 정확히는 관제엽서.엽서라는 이름도 새삼스러운데 관제엽서라니 더 그렇다. 그녀가 쓰던 관제엽서의 가격이 160원이라고 했던 것 같다. 십오 년도 더 지난 일이다.장편 소설이라도 끝내면 나는 종종 먼 동네를 일주일쯤 여행하곤 했다. 되도록 내가 사는 서울에서 먼 산촌이나 바닷가 마을로. 집을 떠나 있는 동안은 글도 안 쓰고 책도 안 읽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았다. 그냥 슬슬 걷고 무언가를 먹고 산봉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수평선 끝에다 멍청한 시선을 던져 두곤 했다.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과 잠깐의 인연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녀도 그중 하나였다. 남도의 아름다운 언덕 마을에 있는 작은 카페 주인인 그녀는 놀랍게도 일흔이 넘은 나이였다. 그런데도 독특한 카페 분위기 때문인지 어색하기는커녕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그녀는 휘핑크림 대신 산양유를 넣은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고, 커피콩을 기계가 아닌 무쇠 절구에 으깨듯 빻았다. 그리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서 예쁜 그림을 곁들인 엽서를 썼다.길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젊어 한때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는데 그때의 제자들과 사십 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제자들은 원주, 서귀포, 목포,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그녀에게 역시 엽서를 보내왔다. 메일과 휴대 전화 문자 메시지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손 편지는 그 자체로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엽서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 내용이 공개되는 형식이어서 나도 그녀의 제자들이 보내온 엽서를 읽을 수 있었다. 카페 벽에 가득했으니까. 제자들도 그 사실을 잘 아는 듯 어떤 제자의 엽서에는 “우리 선생님 카페에 자주자주 들러 주세요. 산양유 아이스크림 짱!”이라고 적혀 있었다.그녀가 얼마나 여러 번 제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지는 제자들로부터 온 엽서의 내용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떡볶이집에 가서 떡볶이 돈가스를 주문하려 했는데 떡볶이집이라 떡볶이라는 말을 빼고 주문했더니 떡볶이 없는 그냥 돈가스가 나왔더라는 내용 같은 거였다.떡볶이집이라서 돈가스 시키면 당연히 떡볶이 돈가스가 나오는 줄 알았다고 울상을 지었더니 떡볶이집 주인 청년이 지체 없이 떡볶이 일 인분을 공짜로 턱 하니 내주더라고.어쩌다 한 번 쓰거나 일 년에 두어 번 보내는 편지라면 이런 내용으로 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식이라는 것은 뜸할수록 화급하거나 심각한 것일 테니까.이런 내용도 있었다.콧방울 얘기였다. 콧방울이란 코의 끝부분에 양쪽으로 불쑥 내민 부분을 이르는 말인데, 그걸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편지를 보낸 제자는 뒤늦게 안 모양이었다.거울 앞에서 자기도 콧방울에 힘을 주어 움직여 봤더니 정말 콧구멍이 벌름거렸다며 신기해 죽겠다는 듯 편지를 써 보낸 것이었다. “선생님도 그게 돼요? 그게 되나요?” 하며.그걸 여태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나로서는 더 신기했지만 그 엽서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려 보았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밝히지는 않겠지만 재밌고 무구해 보이는 그 제자의 이름은 요즘 아이들 예쁜 이름 순위에도 오를 만한 것이었다.나는 그 제자의 이름에 깃든 사연을 그녀에게서 들었다.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였던 것이다. 지어 주었다기보다는 바꿔 주었다고 해야 맞을까. 제자의 예쁜 이름은 원래 제자의 딸 이름이었노라고.딸은 그럼 엄마의 이름을 갖게 된 거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오래된 일이라며 선선하게 말했다. 딸은 세상을 떠났다고.딸을 잃은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제자에게 그녀는 오랫동안 설득의 편지를 보내다가 이름을 딸의 이름으로 바꾸고 딸의 못다 한 생을 살라고 권했다고 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화를 내고 한동안 편지를 끊었던 제자는 몇 년 전부터 다시 엽서를 보내오기 시작했다고. 물론 예쁜 딸의 이름으로. 그리고 지금은 저렇게 시답잖은 콧방울 얘기까지 하게 된 거라며 그녀는 웃었다.산양유 아이스크림 카페에 일흔이 넘은 주인이 잘 어울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번지수까지 알 수 있으니 늦었지만 그녀에게 손 편지를 써 볼까. 카페 담장 안에 서 있던 키 큰 귀룽나무도 흰 꽃을 피웠겠지.구효서 님 | 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나를 용서하는 시간
2020.05.06   조회수 : 535    댓글 : 0개
한동안 나의 삼십 대 초, 중반 시절이 기억나지 않았다. 십 대, 이십 대를 떠올리면 싱그럽고 아름답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겨 버렸다. 머릿속이 어둠에 휩싸였다. 안타깝게도 기억의 스위치를 내린 사람은 바로 나였다.서른세 살, 운명이라고 믿었던 남자와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온 날 밤이었다. 급하게 얻은 원룸의 낯설고 차가운 벽 한편에 붙어 밤새 울었다. 켜켜이 쌓아 둔 아픔이 가슴을 찢고 나와 고통에 몸부림쳤다.어머니는 종일 내 옆에 가만히 앉아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다음 날 새벽에 결심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기억하지 않기로.일 년간의 이혼 소송을 마친 뒤, 나는 일상을 되찾아 갔다. 좋은 회사로 이직했고, 회사 근처 편안한 집으로 이사했다. 여유 시간엔 친구들을 만나고, 부모님과 여행도 갔다.겉으로 보기에 나는 아주 괜찮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혼자 있으면 문득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슬픔이 몰려왔다. 작은 자극에도 분노를 터트렸다. 분명 잘 지내고 행복하다고 믿었는데, 당혹스러웠다.이 년이 지나서야 애써 눌러 온 감정을 마주했다. 그 실체는 놀라웠다. '이혼하다니, 난 인생의 패배자야.'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을 거야.' '나는 행복하게 살 자격이 없어.' 매일 이런 생각과 함께 미움, 자책, 죄책감에 빠졌다.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애처로운 믿음은 산산조각 났고, 비로소 바짝 말라 버석거리는 감정을 바라보았다.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나를 괴롭히고, 나를 둘러싼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나는 기억의 스위치를 켰다. 옛 상처와 대면해야 했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난 날을 떠올리면 똑같이 아팠다. 꾹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치유의 여정은 괴롭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서 비로소 나에 대한 이해와 연민, 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이제 받아들일 용기가 생긴다.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만을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리석은 두 사람, 상대를 헐뜯기 바빴던 전쟁 같은 싸움, 깨져 버린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조금은 알겠다. 과거의 나를 용서해야 현재를 살 수 있고, 상대방도 용서할 수 있음을. 그리고 삶을 사랑할 수 있음을.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꽃이 피어오른다. 이 계절에도 삶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파도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작은 용기가 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파도와 함께 즐겁게 춤출 용기 말이다. 오늘도 나에게 따스한 말을 건넨다.'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정말 애썼어. 사랑해.'김아름 님 | 서울시 송파구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별명 하나
2020.05.06   조회수 : 417    댓글 : 1개
은행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레 아버지를 만났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찻집으로 향했다.“아이들은 잘 자랐지요?” 이레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아이들 안부를 알려 주었다. “우리 이레는 화가가 되었십니더.”이레는 오래전 내가 산골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담임을 맡은 아이다. 학원도 없는 산골이라 그림 수업이라곤 담임의 가르침이 전부였다. 새 학기가 시작된 주, 교실에 진열할 작품을 한 점씩 가져오기로 했다. 이레는 찰흙으로 빈 병을 꾸며 제출했다. 꽤 그럴듯해 보였다.“야, 멋있다. 이레는 화가로구나.” 그날 이후 이레는 아이들 사이에서 ‘화가’로 불렸다.한 달 뒤, 군청에서 ‘벚꽃 그리기 대회 참가 요청’ 공문이 왔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이레를 추천했다. 용기백배해진 이레는 기꺼이 나가겠다고 했다. 나는 수업을 제쳐 두고 수채화 그리기 특강을 했다. 칠판을 도화지 삼아 색분필로 그림을 그려 보였다.“나무에 물감을 칠할 때는 페인트칠하듯 하지 말고 이렇게 점을 찍듯이 해 주세요. 그러면 사이사이로 하늘도 보이겠지요.” 아이들은 내가 미술에 문외한이라는 것도 모른 채 박수를 쳤다. 이레는 커다란 합판을 메고 당당하게 대회장으로 떠났다.그날 저녁, 나는 아내에게 민망할 정도로 면박을 받았다. 읍내 중심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아내가 알려 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아내는 대회에서 아이 삼십 명을 인솔했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동안 동료 교사들과 정자 쪽으로 올라갔다.그때 바위 뒤에서 혼자 그림 그리는 아이를 발견했다. 도화지에 점을 수백 개 찍고 있었는데 도무지 그림이라고 할 수 없어 보였다. 담임이 누군지 물어보니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고. 부끄러워 꽁무니를 뺐다는 아내는 이후로 종종 그 사건을 들추어 나를 놀렸다.이레 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이레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바꾸어 주었다. 이레는 개인전도 성공적으로 몇 번 열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추억과 아름다운 고향이 자기 그림의 밑바탕이 됐다고.어떻게 화가가 되었는지 궁금하다는 내 말에 이레가 답했다. “선생님이 저를 화가라고 불러 주신 덕분이지요.” 나는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임채인 님 | 전 초등학교 교사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사랑법
2020.05.06   조회수 : 359    댓글 : 0개
나와 아내가 처가에 간 날, 공교롭게도 장인어른이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평생 땅과 씨름하느라 자전거조차 사 본 적 없었던 장인어른이다. 몰래 모은 돈으로 오토바이를 산 이유는 장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장모님은 얼마 전부터 무릎 관절염으로 제대로 걷지 못했다. 장인어른은 장모님을 태우고 동네라도 휘 돌아보고, 가까운 보건소에서 진료도 받게 하고, 집에서 꽤 떨어진 비닐하우스까지 데리고 다닐 생각이었다.장모님을 위해 산 오토바이를 가장 반대하는 사람 역시 장모님이었다. 혹시 타다가 넘어지거나 부딪치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며, 왜 샀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당사자의 거센 반대에 직면한 장인어른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무남독녀인 아내와 나는 두 분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막을 보면 서로 사랑하고 걱정해서 일어난 일인데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관절염으로 걷지 못하는 아내를 여기저기 태우고 다니고 싶은 것이 장인어른의 사랑법이라면, 만에 하나 남편이 사고를 당할까 걱정하는 게 장모님의 사랑법이었다.결국 장인어른은 아쉬워하며 우리와 읍내에 가서 오토바이를 환불했다. 판매상도 자초지종을 듣더니 잘한 결정이라며 장인어른을 위로해 주었다. 다행히 집으로 가는 장인어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평화로운 가정에 먹구름을 불러온 전쟁은 장인어른의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애초부터 승자와 패자로 나뉠 일이 아니기에 두 분 모두 승자라 할 수 있었다.나는 두 분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우리 부부도 이런 전쟁 한번쯤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바이가 사라진 자리에 매화 꽃봉오리가 피고 연둣빛 햇살이 그득했다.홍비표 님 | 대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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