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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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파릇파릇 행진

“너뜰, 좀 하네!” 양상추 작업장에서 일하는 김종혁과 작업반장 이태호, 격투기 선수 출신 김진홍과 재첩 잡는 어부 김태우. 덩치로 보나 말발로 보나 선배 같은 신입 넷이서 똘똘 뭉쳤다. 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작업하다 꽁꽁 언 손으로 야구공을 쥐었고, 전국으로 배송할 재첩 국을 펄펄 끓이다가 야구장으로 달려왔다. 몸무게 백 킬로가 넘는 진홍은 쌀 도정을 하다가 손바닥에 허연 쌀가루가 묻은 채로 공을 잡았다. 


보청기를 끼고도 잘 듣지 못하는 종혁은 눈이 좋다. 운동 신경이 둔해 아직 야구 방망이를 들 실력은 못 돼도, ‘오늘의 경기’를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깨알같이 기록한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좋아서 했다는 기록에 투수도, 삼루수도, 유격수도 긴장한다. 눈치코치 없는 종혁 덕에 우리는 자주 볼 빨개지는 무안함을 경험한다. 그래도 다 맞는 말, 감독 대신 하는 말 같기도 하고 단장의 속을 시원하게 긁기도 하고.


이종 격투기를 했다는 거구 진홍은 야구단에 오자마자 포수를 한다. 보호장비를 쓰고,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두어 시간 하면서도 “뭐, 이것쯤이야.” 하며 큰 눈으로 웃기만 한다. 시원하게 이기고 있는 경기엔 신입에게도 타격의 기회가 주어진다. 겨울 내내 양상추밭에서, 섬진강에서, 정미소에서 이 순간만을 위해 타격 연습을 한 신입들. 물먹고도 행진, 파릇파릇 행진, 아삭아삭 행진.

 

진홍의 등장에 상대 팀은 비상이다. 멀리멀리 홈런 칠까 싶어 “외야로, 외야로.” 하며 수비 강화. 9번 타자인데도 4번 타자처럼 상대 팀이 긴장하는 이유는 저벅저벅 걸음만으로도 롯데의 이대호 선수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첫 스윙에 실력을 들키면 “안으로, 안으로.” 하며 수비는 다시 제자리.

 

사회인 야구단 ‘어쭈구리.’ 신입생이 있어 더 생생하고 싱싱하다. 이기거나 진지한 것도 좋지만 처음처럼 모르고 서투르면 어때. 한 잎 한 잎 모여 단단하고 맛있게 자라는 양상추처럼, 작지만 야무진 동그라미를 그리는 야구공처럼 우리도 잘할 수 있을 텐데.

“형, 형, 우리 좀 해요!”


석민재 님 | 시인, 어쭈구리 야구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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