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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님 에세이] 호랑이 굴을 이긴 국밥
2018.06.05   조회수 : 1,596    댓글 : 3개

결혼 날짜가 다가오자 여자 친구에게 미안했다. 내가 사는 원룸에 신혼살림을 차리는 데다 변변한 반지 하나 못해 줄 만큼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앞뒤 재지 않고 더 나은 연봉을 주겠다는 직장으로 이직했다. 몇 달 뒤, 대표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회사에 투자하면 일자리도 보장되고 수익금도 가져갈 수 있다는 것. 그 말에 투자를 결심했다.

 

얼마 후 여느 때처럼 출근하니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대표와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나를 비롯한 신입 사원들은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날 오후에서야 사기당한 걸 알았다. 없는 형편에 삼천만 원이라는 빚이 생기고 말았다. 막막했다. 이렇게 큰 사고를 치고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여자 친구에게 전화 걸어 자초지종을 말하고 파혼하자 했다. 그녀가 수화기 너머로 뭐라 말하는데도 듣지 않고 휴대 전화를 꺼 버렸다.

 

며칠간 방구석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 그때 누군가 대문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그녀였다. 방으로 들어선 그녀는 빈 소주 병들을 보더니 말없이 나를 끌고 우리가 자주 가던 국밥집으로 향했다.

 

식사가 나오자 그녀는 고기를 모두 건져 내 뚝배기에 올려 주었다. 수북한 고기를 보니 배가 무척 고팠다. 밥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내가 눈치를 보자 그녀는 다정하게 소금을 넣겠느냐고 물었다. 그 따뜻한 목소리에 그만 눈물이 터졌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훌쩍이며 국밥을 밀어 넣었다.

 

신기하게도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자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여전히 절망스럽고 나 자신이 한심했지만 인생이 끝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정신 바짝 차리면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그녀를 잃기 싫었다.

 

예정대로 결혼식을 올린 뒤, 나는 아르바이트하며 다시 직장을 구했다. 그녀는 어려운 시기를 불평 없이 함께 견뎌 주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호랑이 굴을 빠져나왔다. 빚 때문에 생활은 빠듯하지만 목숨을 건졌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다. 그녀의 지혜가 담긴 국밥 한 그릇 덕분에.

 

김대영 님 | 대구시 중구 

제13회 '생활문예대상' 동상 - 호랑이 굴을 이긴 국밥

  

    

댓글 (3)

장은영
2018.06.14
삭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 정말 소중한 보물을 만나셨네요.벗삼고 동지삼아 행복한 삶이시길....
dlaudgml
2018.06.16
정말 좋은 분이 옆에 계셨네요. 가장 큰 복인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
혁신을꿈꾼다.
2018.06.20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들은 왜그럴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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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완벽한 여름날
2018.06.05   조회수 : 682    댓글 : 0개
최근에 한 회, 한 회 아껴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러브 유어 가든: 힐링의 정원〉. 방치된 정원을 새롭게 꾸며 주는 내용으로, 2000년 엠비시 대표 프로그램인 〈러브 하우스〉와 똑 닮았다. 바뀐 정원을 보고 울먹이며 감동하는출연자들의 얼굴 클로즈업까지.출연자 대부분은 가족 중에 아프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고, 그를 전적으로 돌보는 헌신적인 이가 있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집 안에서 지내는 이들이 수목과 관목, 각종 꽃과 풀로 채워진 멋진 정원을 감격한 얼굴로 바라본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면, 감동을 연출하는 편집과 구성의 뻔한 수법을알고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오늘 점심을 먹으며 본 에피소드는 닉슨 가족의 얘기였다. 영국 헤리퍼드에사는 리앤은 아로마 요법 마사지사로 일하며 살았는데, 마흔셋에 루게릭병을진단받는다. 원예사 프랜시스는 근육이 위축되고 마비를 겪는 리앤이 좋아할만한 식물을 떠올리며 시골 허브 정원을 방문한다. 다양한 식물이 가득한 허브밭을 보는 프랜시스.“정말 아름다워.”를 연발하는 그에게 주인은 몇 가지 허브를 추천한다. 마음을 달래고 긴장을 풀어 주는 ‘라벤더’, 잎과 꽃이 각각 다른 향을 내고 소화 불량과 수면 장애에 좋은 ‘레몬 버베나’, 활기를 주고 불안증 치료에 효과적인 ‘버거못’.프랜시스가 ‘버거못’ 향기를 맡으며 홍차와 꽃향기가 떠오른다고 하자 주인이 답한다. “향기만으로도 희망을 안기는 거예요.여름 같죠?” “네, 맞아요. 정확해요. 완벽한 여름날요.”눈물을 닦고 작업하러 카페로 나섰다. 모처럼 맑은 날씨가 아까워 씩씩하게걸었다. 카페에서 홍차를 시켰다.그러고 보니 어제 동네를 걷다가 한 가게 앞에서 화분 가득 핀 ‘구문초’, ‘로즈 제라늄’의 진하고 톡 쏘는 향기를 맡았다. 여름밤의 열기를 잠시 잊게 하는 강한 향기. 모기를 쫓는다며 화원 앞에 내놓고파는, 흔하지만 강인한 허브다.지난달에 분양받은 세 평 남짓한 텃밭에 구문초와 각종 허브를 심어야겠다.여름을 향기롭고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허브로 채운 정원에서 완벽한 여름날을 보낼 수 있으리라.안난초님 | 만화가
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질투여, 안녕!
2018.06.05   조회수 : 2,060    댓글 : 4개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머리가 좋거나 재능이 있기보다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높은 성적을 받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아이인 나는 서서히 주목을 받았다. 중학생때는 ‘우등생’이라는 시선과 함께 학급 임원도 맡았다.“쟤는 공부도, 운동도 잘한대.”사람들의 관심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론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고, 무엇이든 잘하고 싶었다.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명문으로 꼽히는 여고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공부를 꽤 한다고 자부했다. 하나 첫 중간고사를 치른 뒤 좌절하고 말았다. 마흔다섯 명 가운데 이십 등. 처음 받은 등수에 놀란 나는 그동안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는지 알았다.일 등을 한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모두와 친하게 지냈다. 쉬는 시간마다 공부하는 나와 달리 수업에만 집중해도 좋은 성적을 냈다. 내가꿈꾸던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부럽고질투가 났다.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친구가 미워 툭툭거리곤 했다.체력장을 할 때 감기에 걸려 실력 발휘를 못한 채 양호실로 가는 친구를보면서 속으로 ‘고소하다’는 생각까지했다.그렇게 못난 마음으로 지내던 중 시화전이 열렸다. 미술을 좋아한 나는시화전에 출전했다. 두 명이 한 조가되었다.운명의 장난처럼 그 친구와 한 팀이었다. 매일 방과 후에 한 시간씩 짬을 내 함께 작업해야 했다.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즐겁게 하려고 지원했는데, 반대로 짜증 나는 시간이되고 말았다.시화전 주제는 ‘꽃’. 불편한 마음을 숨긴 채 친구와 어떤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릴지 상의했다. 무심코 친구의 글씨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발로 써도 이보다 낫겠다.’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반면 나는 글씨를 잘 써서 ‘맹’이라는 별명에 글씨체의 ‘체’를 더해 ‘맹체’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친구는 나를 부러워했다.“글씨체 진짜 예쁘다.”친구는 내 노트를 넘겨 보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글씨체가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자기 글씨를 보는 게 싫다고, 콤플렉스라고도 했다.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자신의 스승이 되어 달란다. 다 쓴 노트 한 권만주면 보고 연습하겠다며.그날부터 친구는 틈만 나면 내 자리에 와서 노트를 보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내게 없는장점을 가진 친구를 미워했는데, 친구는 내 장점을 알아봐 주고 배우려 노력했다.글씨체를 봐주면서 친구의 따뜻한 인성을 배웠다. 그동안 질투했다고 차마 고백하지는못했지만 친구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으리라. 이후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기보다 배울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럴수록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발전시킬 수 있으니까.한명희 님 | 경기도 의정부시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의자 버리기
2018.06.05   조회수 : 1,568    댓글 : 0개
우리는 그 의자를 겨울에 버렸다.신혼 가구를 마련할 때같이 온 네모난 화장대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작은 의자)이었다. 다리 한쪽이 삐걱거린 게 몇 년 전부터 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잠깐씩 앉기에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을 꺼내려고 의자를 딛고 올라서는 걸 본 날 나는 의자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의자 폐기 비용은 이천 원이었다. 경비실에서 구입한 동그랗고 작은 납부필증스티커를 의자 한쪽에 붙이고 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엄청 무거운 것을협동해서 든 것처럼 아이가 의자 다리 한쪽을 잡고는 신이 난 얼굴로 앞서 걸었다. 우리는 의류 수거함 옆에 의자를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너무 추워서 어쩔 수없다는 듯 다시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다음 날부터 한파가 이어졌다. 배수관 동파로 물이 역류할 수 있으니 세탁기사용을 자제하라는 안내 방송이 계속됐다. 베란다 유리창으로 여러 모양의 성에가 피어났다. 고층이라 바람이 거셌다. 아이한테 패딩 점퍼를 입히고 문을 열어환기를 시키다가 나는 베란다 창문에 붙어 섰다. 저만치 아래로 경비실 건물이작은 독채처럼 내려다보였다. 경비실 건너에는 벚나무가 있었고(꽃이 피는 4월의 며칠을 빼고는 그게 벚나무라는 걸 일 년 내내 잊고 살지만) 나무 옆으로 음식물 쓰레기통, 그 옆으로 초록색 의류 수거함, 그 옆으로 우리 집 의자가 갈색 점처럼 놓여있었다.화장대 의자에 앉았던 시간이 얼마나 될까. 직장 다닐 땐 출근 시간에 쫓겨 늘서서 화장을 했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주로 물티슈와 체온계 같은 것들이 올려져 있었다.의자를 밀고 다니며 걸음마 하던 아이는 좀 자라자 거기에 인형들을 올려놓고섬 놀이를 했다. 집에 손님들이 와서 식탁 의자가 모자랄 땐 보조 의자로 썼다.‘아직도 안 가져갔네.’ 생각하면서 나는 베란다 창문을 닫고 들어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비슷하게 생긴 의자를 검색했다.다음 날 아이와 외출했다 돌아오다가 나는 의자가 아직도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가 “우리 의자다!” 외치고는 달려가서 앉았다 일어났다 했다. 내놓을 때는 몰랐는데 수거함 옆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를 보니 아이가 언젠가 붙여 놓은 디즈니 공주 스티커가 다리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다음 날엔 눈이 내렸다. 나는 베란다 창문에 붙어 서서네모난 의자 위로 쌓이는 눈을 내려다보았다. 같은 동에 사는 수십 명의 사람이 매일 우리 집 의자를 쳐다보면서 지나다닌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이상했다. 눈이 올 때만이라도 잠시 들여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눈이 그친 오후에 앞을 지나다가 아이는 역시나 “우리 의자다!”를 외치며 달려갔다. 그러고는 의자에 쌓인 눈 위에 글자를 써넣었다. “수거차가 이번 주는 쉬나보다.” 하는 얘기를 나누며 아이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음 날에 환기를 시키면서는 ‘오늘도 안 가져갔구나, 아직이구나.’ 하고 의자를 오래 확인했다.날은 계속 추웠다.다음 날 저녁,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나는 의류 수거함 옆에 한참을 서 있었다. 우리 집 의자가 놓였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신호라도 주고 가지.’‘아이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하는 생각들이 지나갔다. 가로등에 비친 내 그림자를 보면서 휴대 전화를 꺼내 의자가 있었던 자리를 찍었다.주문한 의자는 금세 도착했다. 아이는 우리 의자는 잊은 듯 새 의자에 인형들을 올려놓고 다시 섬 놀이를 했다.환기할 때마다 베란다 창에 붙어 서서 의류 수거함 쪽을 멍하니 내려다보는 습관은 의자를 버린 그해 겨울에 생겼다. 봄이 온 뒤에도 나는 의자를 내놓았던 그주의 사진들을 종종 열어 보았다. 손만 대도 깨질 것처럼 하얗게 언 창문이나 며칠을 내리 분리해 놓은 세탁기 호스. 섬이 없어 육지로 나와 놀던 호랑이 인형들.눈을이고 있는 벚나무 가지와 지난 시간들을 모아서 붙박아 놓은 듯한 갈색 점.점을 덮은 눈. 눈 위로 아이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국, 엄마 아빠 사랑해요, 덤처럼 그려 넣은 하트 하나.최은미 님 | 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당신에게 평화가
2018.05.08   조회수 : 2,585    댓글 : 15개
인생의 공백기가 있었다. 마흔을 넘어선 나이. 자신감은 충만했지만 세상은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나는 점점 위축되었다.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중, 한 마트에서 겪은 일이다. 카운터 직원이계산하려는 베트남 여성에게 고함을 쳤다. “저리 비켜! 가뜩이나 바쁜데,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배우든지.” 그리고 뒤에 선 나부터 계산하는 게 아닌가. 그모습을 보고 외국인을 위한 마트를 열기로 마음먹었다.마트를 하면서 외국인들과 친해지려 대화를 계속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은조용히 물건만 사고 돌아갈 뿐이었다. 그래도 각 나라의 간단한 인사말을 외워 건네며 친근한 인상을 주려 노력했다.시간이 흘러 제법 많은 손님이 왔고, 이런저런 대화도 오갔다. 그제야 그들이 왜 한국인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지 않는지 알았다. 모욕적인 언사와 구타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하루는 머리를 크게 다친 친구가 왔다. 뼈가 보일 정도로 찢어졌다. 도를 넘었다고 생각해 경찰과 노동청에 신고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한데 그 친구는 한국어가 서툴러 오히려 불이익만 받았고, 그를 도와준 우리 가게는 사장들로부터 출입 금지를 당했다.힘들게 일군 가게에 위기가 왔다. 인적이 뜸한 가게를 홀로 지켰다. 사장 눈치를 봐야 하는 그들이 우리 가게에 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어느 날, 셀 수 없이 많은 외국인이 한꺼번에 가게로 들이닥쳤다.“고맙습니다, 형님!”어찌 된 영문인지 물으니 주말마다 여는 축구 모임에서 이번 사건 이야기를나눴단다.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었으니 자신들도 보답하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했다. 작은 도움을 준 것뿐인데, 부끄럽고 고마웠다.어느새 나는 가족 이야기나 고민, 힘든 일과 등을 들어 주는 사랑방 아저씨가 되었다. 짧은 회화가 가능한 언어도 열 개에 이른다. 나의 세 딸도 자연스레외국인들과 인사한다.“앗살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선호인 님 | SNS(에스엔에스) 아시안 푸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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