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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님 에세이] 호랑이 굴을 이긴 국밥

결혼 날짜가 다가오자 여자 친구에게 미안했다. 내가 사는 원룸에 신혼살림을 차리는 데다 변변한 반지 하나 못해 줄 만큼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앞뒤 재지 않고 더 나은 연봉을 주겠다는 직장으로 이직했다. 몇 달 뒤, 대표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회사에 투자하면 일자리도 보장되고 수익금도 가져갈 수 있다는 것. 그 말에 투자를 결심했다.

 

얼마 후 여느 때처럼 출근하니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대표와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나를 비롯한 신입 사원들은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날 오후에서야 사기당한 걸 알았다. 없는 형편에 삼천만 원이라는 빚이 생기고 말았다. 막막했다. 이렇게 큰 사고를 치고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여자 친구에게 전화 걸어 자초지종을 말하고 파혼하자 했다. 그녀가 수화기 너머로 뭐라 말하는데도 듣지 않고 휴대 전화를 꺼 버렸다.

 

며칠간 방구석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 그때 누군가 대문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그녀였다. 방으로 들어선 그녀는 빈 소주 병들을 보더니 말없이 나를 끌고 우리가 자주 가던 국밥집으로 향했다.

 

식사가 나오자 그녀는 고기를 모두 건져 내 뚝배기에 올려 주었다. 수북한 고기를 보니 배가 무척 고팠다. 밥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내가 눈치를 보자 그녀는 다정하게 소금을 넣겠느냐고 물었다. 그 따뜻한 목소리에 그만 눈물이 터졌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훌쩍이며 국밥을 밀어 넣었다.

 

신기하게도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자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여전히 절망스럽고 나 자신이 한심했지만 인생이 끝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정신 바짝 차리면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그녀를 잃기 싫었다.

 

예정대로 결혼식을 올린 뒤, 나는 아르바이트하며 다시 직장을 구했다. 그녀는 어려운 시기를 불평 없이 함께 견뎌 주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호랑이 굴을 빠져나왔다. 빚 때문에 생활은 빠듯하지만 목숨을 건졌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다. 그녀의 지혜가 담긴 국밥 한 그릇 덕분에.

 

김대영 님 | 대구시 중구 

제13회 '생활문예대상' 동상 - 호랑이 굴을 이긴 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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