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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등산보다 입산

대학 졸업 후 이력서를 준비하면서 취미를 ‘입산(入山)’이라 적었다. 진짜 취미는 독서지만 어쩐지 진부해 보였다. 등산이라 하려니 그건 또 아니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산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입산이라 했다. 드문 취미 덕일까, 나는 회사에 합격했다.

 

한 시절을 보낸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다시 설악산에 갔다. 온통 녹색인 세상에서 눈은 모처럼 휴식을 취했다. 풀 향기에 코를 킁킁거리고,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에 귀도 호강했다.

 

그날 나를 비롯한 등산객들은 울산바위를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왜 정상에 오르려 애를 쓰는가.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 허기지고 현기증마저 나는 상황에서 무얼 위해 이러는가. 정작 정상에 이르렀을 때는 특별한 감명을 받지 못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드디어 다 왔다. 얼른 내려가서 밥 먹어야지.’

 

길은 정해져 있었다.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남은 거리를 알려 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여기엔 다람쥐가 많이 살아요.” “쪽동백나무가 울창한 곳이에요.”라고 써 놓을 순 없었을까. 그랬다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순간을 즐길 텐데.

 

십오 년 만에 설악산을 오르며, 그 옛날 이력서에 등산이 아닌 입산을 적은 이유를 다시 이해했다. 삶을 대하는 자세도 이러하고 싶다.

 

박은지 님 | 서울시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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