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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마루] 고양이의 농사법
2018.05.08   조회수 : 2,030    댓글 : 1개

새벽에 불을 켜자 돈벌레 몇 마리와 거미들이 몸을 감춘다. 이 녀석들은 특별하게 피해를 주지 않기에 죽이지 않고 그냥 둔다. 설령 피해를 주는 벌레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어느 생명체 건 목숨과 목숨은 동등하다.

 

닭 울음소리와 범종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온다. 종소리는 규칙적이고 새벽닭 소리는 함부로 흩어진 수은 구슬 같다. 매화도 지고 목련꽃도 졌다. 수선화도 지고, 패모꽃도 이울었다. 골담초와 보리수의 철이다. 오랜만에 집 안을 둘러본다.

 

이 집에는 참 많은 것이 산다. 아내와 내가 집의 주인이라고 등기를 해두었지만, 실제로 이 집의 주인은 풀과 나무와 곤충과 쥐나 뱀, 고양이와 새들이다.

 

그들이 더 오래 머물고, 그들이 더 많이 사용한다. 다 따서 모으면 한말은 족히 나올 보리수 열매는 곤줄박이나 뱁새들의 것이고, 살구나 매실은 까치들이 독차지한다. 홍시는 산까치, 고구마는 두더지가 주인이다. 등기상 주인들이 열매를 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것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꼭 필요한 이들이 가져가게 해야 한다’는 아내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누군가 준 목련꽃 차가 마실 만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목련 나무가 활짝 꽃 피웠을 때 “목련꽃 차를 만들까?” 하였더니, “뭐하러 그래요. 저도 저 꽃 피우느라 얼마나 애썼을 것인데…….” 아내의 그 한마디에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농사를 본업으로 하지 않는 가짜 농부인지라, 밭이고 공터고 간에 심고 싶은 것을 조금 심고는 방치하였다. 그러다 보니 키 높이로 풀이 자라는 건 보통이었다.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마당의 잔디밭을 예초기로 한 번씩 미는 정도였다. 마당에는 수시로 뱀이 지나다니고, 다양한 종류의 거미가 온갖 곳에 집을 쳤다. 한번은 작은 뱀이 거미줄에 걸려 살려 준 적도 있다.

 

수시로 드나드는 고양이들은 쥐나 뱀을 잡아서 현관 앞에 선물로 놓기 일쑤였고, 두더지들은 나보다 부지런히 밭을 갈아 두었다. 비 온 뒤면 두꺼비가 뛰룩뛰룩 눈을 굴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허술하게 지었던 닭장의 닭을 족제비가 채 갔지만 닭장을 보수한 후 키운 닭이 날마다 알을 내어 준다.

 

닭 울음소리가 잠잠해지면 꿩이 꿩꿩 하면서 허공을 가른다. 새벽 새들의 출현 시간에도 순서가 있다. 큰 새들이 먼저 소리를 낸 후 작은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한다. 이윽고 해가 뜰 무렵이면 가장 작은 새들이 햇살 쪼가리 같은 소리를 쫀다. 이 집에 오는 새의 숫자를 다 헤아리면 수백 마리는 족히 된다. 인근에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더 늘어났다. 새가 많아진 후 집 안 과일나무에서 열매 따는 것을 멈추었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니, 그것을 더 필요로 하는 자가 먹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작년 초에 두둑을 완성했다. 그 가을에 두둑마다 다른 채소를 심었더니 잘 자랐다. 두 두둑의 배추는 봄동으로 먹으려고 아껴 두었으나, 누군가가 하나둘씩 싹둑 잘라 가더니, 오십 포기 가까운 봄동이 다 사라졌다. 그래도 손님이 왔을 때 우리 가족도 한 포기는 맛을 봤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잘라 갔을 것이다. 봄동이 없어도 두둑마다 들나물이 넘쳤다. 참나물과 당귀와 재래 당귀와 방아와 무들이 있었다. 그중 시금치가 특히 잘 자랐다. 작은 두둑 하나인데, 왕성히 자란 그것들은 한 식구가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으려고 시금치 잎을 수확했더니 열 묶음도 더 되었다.

 

“어쩌다 당신이 시금치 농사는 잘 지으셨네요?”

아내가 말했다. 나는 빙그레 웃음으로 대답했다. 시금치 농사가 유독 잘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두둑을 만들고 씨만 뿌려 두었지, 농사는 고양이가 지었다. 작년 가을 시금치를 심은 뒤에 보니 집을 드나드는 고양이 녀석들이 유독 그 두둑에다 똥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걸 안 나는 시금치 두둑 옆에 고양이가 먹을만한 것들을 부지런히 갖다주었다. 고양이는 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쥐나 뱀 등)을 선물로 주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필요로 했던 시금치를 선물로 듬뿍 준 것이다.

 

올가을에는 시금치를 심었던 두둑에 무얼 심을까. 고민이 굼실굼실 아지랑이처럼 고무락거리는 늦봄이다.

 

이대흠 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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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지장화
2018.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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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님  님의귀한글을 읽고 이 아침 행복합니다  평생 이대흠님을 기억할거같습니다  아름다운 삶 마음이 걸어두고싶은 그림같습니다  생명 !! 깊이 깨닫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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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마루] 당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2019.01.08   조회수 : 348    댓글 : 1개
며칠 전 베트남에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커피 선물을 받았다. 베트남 여행을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받는 그 나라 특유의 커피였다. 잊지 않고 내 선물까지챙겨 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으나 찬장에는 그 커피가 이미 대여섯 상자는 있었다. 모두 베트남에 다녀온 분에게 받았다.태국에 다녀온 친구로부터는 마뚬차(태국 전통차)와 허브 비누를, 인도에 출장 갔다 온 분에게는 수분 크림과 향을, 일본에 다녀온 가족에게선 쯔유(일본조미료)와 젓가락, 두통약을 선물받곤 했다. 모두 그 나라 특산물이거나 선물하기 좋은 제품이라고 소문난 것이다.특산물 선물은 해외여행만이 아니다. 여수에 다녀온 부모님은 갓김치를, 강원도에 다녀온 후배는 옥수수와 오징어를 보냈고, 제주도에 사는 선배는 겨울마다 귤을 보내 준다. 특산물 하나 변변치 않은 지방에 사는 게 머쓱해질 지경이다.먼 여행길에 오른 사람에게 받는 선물이 반복된다 해도 그걸 상상력 부족이라든지 안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먼 곳에서도 나를 생각해 주었다는 것이니, 선물의 진가는 충분히 발휘된 것이다. 선물을 챙기며 나를 떠올렸을 그 사람, 그 시간에 대한 뭉클한 감격이 바로 선물 자체인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받은 선물들은 늘 뜯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깝기도 하거니와 나를 생각해 준 상대의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얼마 전, 나 역시 오래 계획한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를 키우느라, 회사에 다니느라, 각자 살 일이 바빠 제대로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의 여행이었다. 주부들의 여행이란 으레 그렇듯이 제법 오랜 준비를 해야 했다. 우리는 여행지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일정과 차편, 아이들을 맡길 일과 돌아와 일상을 유지하기위해 미리 준비해 둘 일을 챙기느라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래도 신나고즐거웠다. 근 십여 년 만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가족이 아닌 이들과 떠나는 일은 이례적이고 오랜만이었다. 나만 들뜬 것이아니라 어쩐지 두 아이도 흥분한 모습으로 나를 배웅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을 나서는데 열 살짜리 둘째가 소리쳤다.“엄마, 꼭 선물 사 와!”아뿔싸! 녀석이 칭얼거리지 않고 선뜻 다녀오라고 한 데에는 그런 꿍꿍이가있는 것이었다. 나는 선심을 쓰듯 알겠다고 크게 말하곤 집을 나섰다.오랜만에 친구들과 보낸 하룻밤은 달콤하다 못해 황홀할 지경이었다. 통화나 메신저로만 나누던 대화였다. 목소리와 글자가 아닌, 직접 얼굴을 보며, 손을 매만지며, 웃고 울며 떠드는 그시간이 그렇게 짧을 수가 없었다.그리고 헤어지는 날이 되었다. 선물을 사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나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여행 선물은 특별한 것이 아닌 생활용품을 사는 것. 손톱깎이나 국자, 김치 통이나 슬리퍼 같은 것들.물론 지역 특산물을 사는 것이 그 여행지를 기념하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다만 곁에 두고 오랫동안 그 여행지를 떠올리는 무언가를 갖고 싶다. 먹고 나면 까먹고 마는, 쓰고 나면 잊히고 마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내 옆에 둘 수 있는 것.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처음으로 떠난 외국 여행에서 빈티지 민소매 티셔츠를 사 왔다. 한여름에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집안일 할 때 그 티셔츠를 입으면어쩐지 덜 억울한 기분이 들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순천 여행지에서 산 솜바지는 겨울 낚시 철에 요긴하게 입는다. 속초에서는커피 그라인더를, 광주에서는 스카프를, 화순에서는 빗을, 청도에선 냄비를,남해에서는 LP(엘피) 플레이어를 사 왔다.간절한 여행일수록 그곳에서 사 온 물건에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산 컵에 마시는 커피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고, 거기서 사 온 거울로 보는 내가더 반짝여 보이며, 그 여행지에서 사 온 사기그릇에 담아 먹는 시금치가 더 남다른 맛이 나는 것처럼. 착각이나 기분 탓이겠지만 얼마나 황홀한 여독인가!이제 곧 봄이 되면 많은 이가 봄나들이를 나갈 것이다. 올해만큼은 지역 특산물 말고 조금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길 권하고 싶다. 귀이개나 탁상시계, 액자도 좋고, 동전 지갑, 튀김 요리기 같은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욕실 커튼이나 베개 보, 스테이플러 같은 건 어떨까.아, 그래서 강릉 여행에서 내가 사 온 선물은 닭 강정이나 오징어순대가 아니라 가족 파자마 네 벌이었다. 식구들이 쪼르륵 그 옷을 입고 있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십여 년 만에 떠난 친구들과의 여행을 떠올리며 혼자 빙그레 웃을 것이다.김이설 님 | 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사랑하면 변한다
2018.12.07   조회수 : 1,351    댓글 : 4개
한 달여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내심 기대했다. 우리 집 강아지가얼마나 열렬하게 나를 맞아 줄지.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고요했다. ‘엄마가 얘를 데리고 산책 나갔나?’ 한데 엄마의 운동화는 그대로 있었다.걱정되는 찰나 내 방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있는 강아지가 보였다. 배낭을 내팽개치고 달려가 껴안았다. 녀석은 그제야 내 얼굴을 핥았다.우리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녀석을 데려왔다. 다른 강아지들에 치여 구석에서 떨고 있던 아이였다. 녀석은 집에 온 뒤로도 얼마간 우리 눈치를 봤다. 작은소리에도 놀라고 손님이 오면 침대 밑으로 숨었다. 그런 녀석이 이제는 내 방침대에 평온하게 누워 있다. 사랑받은 티가 줄줄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의 까슬한 털과 탁한 눈동자는 어디에도 없었다.그날 밤 엄마 옆에 누워 그 일을 말했다. 엄마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내가 서열 4위로 밀려난 거라고 했다.“너 없는 사이에 네 방도 걔 줬어.”“너무하네.”“처음엔 털도 지저분하고 얼굴은 시꺼먼 게 못생겨 보였는데 정붙이고 나니까사랑스럽기만 하더라.”나와 아빠는 귀여워할 줄만 알았지, 실질적으로 녀석을키운 건 엄마였다. 하지만 매일 안고, 산책시키고, 씻기면서도 엄마가 녀석에게곁을 내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상처 때문인듯했다. 그런 엄마가 녀석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동물농장〉 보면 어쩜 저렇게 생겼나 싶은 개들도 나오잖아. 근데 정붙이고나면 마냥 귀엽단 말이지. 사실 사람도 그래. 우리끼리는 예쁘다, 못났다 기준을 나누지만 우리를 만든 신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예뻐 보이지 않을까?”문득 여행지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며 “이건 눈을 감았고, 이건 턱이 비뚤어지게 나왔어.” 하고 여러 장을 삭제한 게 떠올랐다. 생각이 깊어지는 밤, 녀석은 코까지 골며 우리 다리 사이에서 잠들었다.이유진 님 | 서울시 강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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