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장바구니0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꽃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학부모 공개 수업을 했다. 새내기 교사였던 나는 수학 ‘9까지의 수’ 단원으로 수업할 참이었다. 입학한 지 한 달 된 아이들은 “수학책 38쪽 펴세요.” 하면 첫 장부터 하나, 둘, 셋을 세다가 “몇 쪽이라고요?” 하고 아우성쳤다. 그래서 교과서는 넣어 두고 학습지를 만들었다.


공개 수업 날, 잔뜩 긴장한 나는 야심 차게 준비한 학습지를 나눠 주었다. 숫자를 세고 빗금을 치는 쉬운 내용이라 걱정 없었다.


“숫자만큼 수를 세면서 동그라미를 하나씩 지우세요.”

한데 금세 다했다고 외쳐야 할 아이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더니 “선생님, 안 지워져요!” “다 찢어졌어요.” 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지우개로 동그라미를 박박 지우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지우개로 지우는 게 아니라 연필로 엑스(X) 표시하는 거예요.” “엑스가 뭐예요?” ‘아, 아직 영어를 모르는구나.’ 이쯤 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서 급하게 나온 말. “어…… 그게, ‘곱표’가 엑스예요.”

 

“꼽표?” “꽃표?” 아이들이 웅성댔다. 그때 내 앞에 앉은 여자아이가 연필을 들더니 꽃을 크게 그리며 말했다.

“야, 이게 꽃표야.”

학부모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일을 계기로 알았다. 아이들에게는 “숫자만큼 빗금을 치세요.”라고 말해야 한다는걸.

 

양지령 님 | 경남 창원시 

 

   


고객문의

  • 정기구독02 - 337 - 0332
  • 다량문의02 - 330 -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