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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마루] 이름 모를 직원의 친절
2018.04.06   조회수 : 2,150    댓글 : 0개

뭔가 허전하다는 걸 깨달은 건 페루 리마 공항의 출국 심사대 앞에서였다. 뭐지? 갸웃거리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갑! 여권과 탑승권을 대조하는 직원에게 말했다.

“제가 지갑을 잃어버렸네요. 다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빨리 다녀오세요.” 

 

직원에게서 여권과 탑승권을 돌려받자마자 걸음을 재촉했다.

검색대를 거치며 바구니에 지갑을 꺼내 놓고 그 위에 노트북을 얹었다. 스캐너를 통과한 바구니에서 옷과 배낭, 노트북만 챙긴 것이다. 다행히 내가 거친 검색대를 기억해 거기에 서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제가 지갑을 두고 왔네요.”

“어떤 사람이 집어 가는 걸 보았어요.”

직원은 침착하면서도 민첩했다. 탑승권을 보여 달라더니 시간을 확인하고, 옆의 직원을 불러 자기 자리를 맡겼다. 근처에 있던 경비원과 함께 “시시 티브이를 확인해 보겠다.”라며 벽 쪽의 의자를 가리켰다. “저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신속한 대응이 미더웠다. 의자에 앉아 지갑에 뭐가 들었더라, 점검했다. 에콰도르 신분증은 복사해 코팅한 거다. 여기 친구가 “신분증 잃어버리면 복잡해진다.”라고 일러 줘 원본은 집에 뒀다. 현금도 얼마 없고, 에콰도르 은행 현금 카드……. 조목조목 짚다가, 문득 이번 여행을 두고 ‘오버’라던 Y(와이)의 말이 떠올라 그 와중에도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언니, 이건 오버 한 거야!”

숙소로 찾아온 Y가 말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사는 Y는 내가 머무는 에콰도르로 와서 일주일을 함께 보낸 적 있다. 그녀가 리마에 다녀가라 할 적에도 나는 “일을 어느 정도 마치면 그때나.” 하고 사양했다. 그런 내가 후배를 데려다주겠다며 선뜻 리마에 왔으니 Y가 그렇게 말할 만했다.

 

남미 여행차 내가 사는 곳에 들른 후배 덕분에 갈라파고스와 정글 관광을 했다. 뜻밖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후배의 다음 여정은 리마로 가서 동행인을 만나 남미를 함께 여행하는 거였다. 그런데 후배가 난감해했다. 동행인을 리마의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자신이 어느 터미널로 올지 모르니 나중에 알려 주겠다고 했단다. 리마에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여러 군데다.

 

후배는 밤늦게야 리마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동양 여자 혼자 남미에서 밤길을? Y가 잘 아는 택시 기사를 공항에 보내겠다고 했는데도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따라나섰다. 내 마음 편하자고, 후배를 데려다줄 겸 Y도 만날 겸 급히 떠난 여행이었다.

 

후배가 예약해 둔 비행기는 내 항공편보다 20분 일찍 출발했다. 후배는 “공항에서 기다릴게요.” 하고 먼저 떠났다. 한데 내가 리마 공항에 도착했을 때 후배는 없었다. 전광판을 보니 그 비행기가 지연되고 있었다. 후배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출국장 게이트로 나왔다. 우리는 Y가 보내준 기사의 차를 타고 밤길을 달려 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오버’의 보람이 있었다.

 

다음 날은 후배랑 둘이 시내를 구경했다.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어지럼증. 걷다가도 머릿속이 띵하며 아찔해졌다. 해발 고도 약 2,500미터인 곳에서 살다가 바닷가인 리마로 온 후유증이었다.

 

그다음 날, Y는 시내 관광을 시켜 주겠다며 숙소로 찾아왔고 나는 말없이 수긍했다. 리마 공항에서 ‘오버’의 효과를 보았으니까.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후배를 남겨 둔 채 Y의 차에 올랐다. 유명하다는 식당에 가서 세비체(해산물을 회처럼 얇게 잘라 레몬즙에 재워 차갑게 먹는 음식)를 먹고, 한국의 강남 비슷하다는 곳에서 커피도 마셨다. 한국 식품점에서 장을 보고 인접한 한국 음식점에서 Y가 김밥도 사 주었다. 저녁에 후배랑 먹으라면서.

 

다음 날에도 Y는 아침 일찍 차를 갖고 와서 후배를 버스 터미널에,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후배의 동행인이 알려 준 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동행인을 만난 후배와 작별하고 Y의 차로 공항에 도착했다. 한데 여행 막바지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떻게 찾을까 싶었는데 직원과 경비원이 한 남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내 지갑이 들려 있었다. 직원에게 확인해 보니 모든 게 그대로였다. 집으로 돌아와 리마 공항 홈페이지 고객 센터에 ‘이름 모를 직원의 친절’에 대해 고마움을 담은 글을 올렸다. 그의 신속한 대응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집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이혜경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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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마루] 당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2019.01.08   조회수 : 347    댓글 : 1개
며칠 전 베트남에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커피 선물을 받았다. 베트남 여행을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받는 그 나라 특유의 커피였다. 잊지 않고 내 선물까지챙겨 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으나 찬장에는 그 커피가 이미 대여섯 상자는 있었다. 모두 베트남에 다녀온 분에게 받았다.태국에 다녀온 친구로부터는 마뚬차(태국 전통차)와 허브 비누를, 인도에 출장 갔다 온 분에게는 수분 크림과 향을, 일본에 다녀온 가족에게선 쯔유(일본조미료)와 젓가락, 두통약을 선물받곤 했다. 모두 그 나라 특산물이거나 선물하기 좋은 제품이라고 소문난 것이다.특산물 선물은 해외여행만이 아니다. 여수에 다녀온 부모님은 갓김치를, 강원도에 다녀온 후배는 옥수수와 오징어를 보냈고, 제주도에 사는 선배는 겨울마다 귤을 보내 준다. 특산물 하나 변변치 않은 지방에 사는 게 머쓱해질 지경이다.먼 여행길에 오른 사람에게 받는 선물이 반복된다 해도 그걸 상상력 부족이라든지 안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먼 곳에서도 나를 생각해 주었다는 것이니, 선물의 진가는 충분히 발휘된 것이다. 선물을 챙기며 나를 떠올렸을 그 사람, 그 시간에 대한 뭉클한 감격이 바로 선물 자체인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받은 선물들은 늘 뜯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깝기도 하거니와 나를 생각해 준 상대의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얼마 전, 나 역시 오래 계획한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를 키우느라, 회사에 다니느라, 각자 살 일이 바빠 제대로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의 여행이었다. 주부들의 여행이란 으레 그렇듯이 제법 오랜 준비를 해야 했다. 우리는 여행지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일정과 차편, 아이들을 맡길 일과 돌아와 일상을 유지하기위해 미리 준비해 둘 일을 챙기느라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래도 신나고즐거웠다. 근 십여 년 만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가족이 아닌 이들과 떠나는 일은 이례적이고 오랜만이었다. 나만 들뜬 것이아니라 어쩐지 두 아이도 흥분한 모습으로 나를 배웅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을 나서는데 열 살짜리 둘째가 소리쳤다.“엄마, 꼭 선물 사 와!”아뿔싸! 녀석이 칭얼거리지 않고 선뜻 다녀오라고 한 데에는 그런 꿍꿍이가있는 것이었다. 나는 선심을 쓰듯 알겠다고 크게 말하곤 집을 나섰다.오랜만에 친구들과 보낸 하룻밤은 달콤하다 못해 황홀할 지경이었다. 통화나 메신저로만 나누던 대화였다. 목소리와 글자가 아닌, 직접 얼굴을 보며, 손을 매만지며, 웃고 울며 떠드는 그시간이 그렇게 짧을 수가 없었다.그리고 헤어지는 날이 되었다. 선물을 사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나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여행 선물은 특별한 것이 아닌 생활용품을 사는 것. 손톱깎이나 국자, 김치 통이나 슬리퍼 같은 것들.물론 지역 특산물을 사는 것이 그 여행지를 기념하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다만 곁에 두고 오랫동안 그 여행지를 떠올리는 무언가를 갖고 싶다. 먹고 나면 까먹고 마는, 쓰고 나면 잊히고 마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내 옆에 둘 수 있는 것.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처음으로 떠난 외국 여행에서 빈티지 민소매 티셔츠를 사 왔다. 한여름에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집안일 할 때 그 티셔츠를 입으면어쩐지 덜 억울한 기분이 들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순천 여행지에서 산 솜바지는 겨울 낚시 철에 요긴하게 입는다. 속초에서는커피 그라인더를, 광주에서는 스카프를, 화순에서는 빗을, 청도에선 냄비를,남해에서는 LP(엘피) 플레이어를 사 왔다.간절한 여행일수록 그곳에서 사 온 물건에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산 컵에 마시는 커피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고, 거기서 사 온 거울로 보는 내가더 반짝여 보이며, 그 여행지에서 사 온 사기그릇에 담아 먹는 시금치가 더 남다른 맛이 나는 것처럼. 착각이나 기분 탓이겠지만 얼마나 황홀한 여독인가!이제 곧 봄이 되면 많은 이가 봄나들이를 나갈 것이다. 올해만큼은 지역 특산물 말고 조금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길 권하고 싶다. 귀이개나 탁상시계, 액자도 좋고, 동전 지갑, 튀김 요리기 같은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욕실 커튼이나 베개 보, 스테이플러 같은 건 어떨까.아, 그래서 강릉 여행에서 내가 사 온 선물은 닭 강정이나 오징어순대가 아니라 가족 파자마 네 벌이었다. 식구들이 쪼르륵 그 옷을 입고 있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십여 년 만에 떠난 친구들과의 여행을 떠올리며 혼자 빙그레 웃을 것이다.김이설 님 | 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사랑하면 변한다
2018.12.07   조회수 : 1,351    댓글 : 4개
한 달여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내심 기대했다. 우리 집 강아지가얼마나 열렬하게 나를 맞아 줄지.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고요했다. ‘엄마가 얘를 데리고 산책 나갔나?’ 한데 엄마의 운동화는 그대로 있었다.걱정되는 찰나 내 방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있는 강아지가 보였다. 배낭을 내팽개치고 달려가 껴안았다. 녀석은 그제야 내 얼굴을 핥았다.우리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녀석을 데려왔다. 다른 강아지들에 치여 구석에서 떨고 있던 아이였다. 녀석은 집에 온 뒤로도 얼마간 우리 눈치를 봤다. 작은소리에도 놀라고 손님이 오면 침대 밑으로 숨었다. 그런 녀석이 이제는 내 방침대에 평온하게 누워 있다. 사랑받은 티가 줄줄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의 까슬한 털과 탁한 눈동자는 어디에도 없었다.그날 밤 엄마 옆에 누워 그 일을 말했다. 엄마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내가 서열 4위로 밀려난 거라고 했다.“너 없는 사이에 네 방도 걔 줬어.”“너무하네.”“처음엔 털도 지저분하고 얼굴은 시꺼먼 게 못생겨 보였는데 정붙이고 나니까사랑스럽기만 하더라.”나와 아빠는 귀여워할 줄만 알았지, 실질적으로 녀석을키운 건 엄마였다. 하지만 매일 안고, 산책시키고, 씻기면서도 엄마가 녀석에게곁을 내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상처 때문인듯했다. 그런 엄마가 녀석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동물농장〉 보면 어쩜 저렇게 생겼나 싶은 개들도 나오잖아. 근데 정붙이고나면 마냥 귀엽단 말이지. 사실 사람도 그래. 우리끼리는 예쁘다, 못났다 기준을 나누지만 우리를 만든 신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예뻐 보이지 않을까?”문득 여행지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며 “이건 눈을 감았고, 이건 턱이 비뚤어지게 나왔어.” 하고 여러 장을 삭제한 게 떠올랐다. 생각이 깊어지는 밤, 녀석은 코까지 골며 우리 다리 사이에서 잠들었다.이유진 님 | 서울시 강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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