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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이름 모를 직원의 친절

뭔가 허전하다는 걸 깨달은 건 페루 리마 공항의 출국 심사대 앞에서였다. 뭐지? 갸웃거리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갑! 여권과 탑승권을 대조하는 직원에게 말했다.

“제가 지갑을 잃어버렸네요. 다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빨리 다녀오세요.” 

 

직원에게서 여권과 탑승권을 돌려받자마자 걸음을 재촉했다.

검색대를 거치며 바구니에 지갑을 꺼내 놓고 그 위에 노트북을 얹었다. 스캐너를 통과한 바구니에서 옷과 배낭, 노트북만 챙긴 것이다. 다행히 내가 거친 검색대를 기억해 거기에 서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제가 지갑을 두고 왔네요.”

“어떤 사람이 집어 가는 걸 보았어요.”

직원은 침착하면서도 민첩했다. 탑승권을 보여 달라더니 시간을 확인하고, 옆의 직원을 불러 자기 자리를 맡겼다. 근처에 있던 경비원과 함께 “시시 티브이를 확인해 보겠다.”라며 벽 쪽의 의자를 가리켰다. “저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신속한 대응이 미더웠다. 의자에 앉아 지갑에 뭐가 들었더라, 점검했다. 에콰도르 신분증은 복사해 코팅한 거다. 여기 친구가 “신분증 잃어버리면 복잡해진다.”라고 일러 줘 원본은 집에 뒀다. 현금도 얼마 없고, 에콰도르 은행 현금 카드……. 조목조목 짚다가, 문득 이번 여행을 두고 ‘오버’라던 Y(와이)의 말이 떠올라 그 와중에도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언니, 이건 오버 한 거야!”

숙소로 찾아온 Y가 말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사는 Y는 내가 머무는 에콰도르로 와서 일주일을 함께 보낸 적 있다. 그녀가 리마에 다녀가라 할 적에도 나는 “일을 어느 정도 마치면 그때나.” 하고 사양했다. 그런 내가 후배를 데려다주겠다며 선뜻 리마에 왔으니 Y가 그렇게 말할 만했다.

 

남미 여행차 내가 사는 곳에 들른 후배 덕분에 갈라파고스와 정글 관광을 했다. 뜻밖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후배의 다음 여정은 리마로 가서 동행인을 만나 남미를 함께 여행하는 거였다. 그런데 후배가 난감해했다. 동행인을 리마의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자신이 어느 터미널로 올지 모르니 나중에 알려 주겠다고 했단다. 리마에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여러 군데다.

 

후배는 밤늦게야 리마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동양 여자 혼자 남미에서 밤길을? Y가 잘 아는 택시 기사를 공항에 보내겠다고 했는데도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따라나섰다. 내 마음 편하자고, 후배를 데려다줄 겸 Y도 만날 겸 급히 떠난 여행이었다.

 

후배가 예약해 둔 비행기는 내 항공편보다 20분 일찍 출발했다. 후배는 “공항에서 기다릴게요.” 하고 먼저 떠났다. 한데 내가 리마 공항에 도착했을 때 후배는 없었다. 전광판을 보니 그 비행기가 지연되고 있었다. 후배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출국장 게이트로 나왔다. 우리는 Y가 보내준 기사의 차를 타고 밤길을 달려 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오버’의 보람이 있었다.

 

다음 날은 후배랑 둘이 시내를 구경했다.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어지럼증. 걷다가도 머릿속이 띵하며 아찔해졌다. 해발 고도 약 2,500미터인 곳에서 살다가 바닷가인 리마로 온 후유증이었다.

 

그다음 날, Y는 시내 관광을 시켜 주겠다며 숙소로 찾아왔고 나는 말없이 수긍했다. 리마 공항에서 ‘오버’의 효과를 보았으니까.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후배를 남겨 둔 채 Y의 차에 올랐다. 유명하다는 식당에 가서 세비체(해산물을 회처럼 얇게 잘라 레몬즙에 재워 차갑게 먹는 음식)를 먹고, 한국의 강남 비슷하다는 곳에서 커피도 마셨다. 한국 식품점에서 장을 보고 인접한 한국 음식점에서 Y가 김밥도 사 주었다. 저녁에 후배랑 먹으라면서.

 

다음 날에도 Y는 아침 일찍 차를 갖고 와서 후배를 버스 터미널에,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후배의 동행인이 알려 준 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동행인을 만난 후배와 작별하고 Y의 차로 공항에 도착했다. 한데 여행 막바지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떻게 찾을까 싶었는데 직원과 경비원이 한 남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내 지갑이 들려 있었다. 직원에게 확인해 보니 모든 게 그대로였다. 집으로 돌아와 리마 공항 홈페이지 고객 센터에 ‘이름 모를 직원의 친절’에 대해 고마움을 담은 글을 올렸다. 그의 신속한 대응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집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이혜경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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