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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기철이와 나

그리스어로 ‘가면’이란 말에서 나온 ‘페르소나’는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영화계에서는 ‘감독의 영화 세계를 대변하는 분신 같은 배우’를 지칭할 때 자주 쓴다.

 

만화 속에도 작가의 페르소나가 있다.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연재한 《검정 고무신》은 책 권수에 비례해 등장인물도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 수많은 인물 중 나의 분신 같은 캐릭터를 한 명만 들라 하면 주저 없이 “기철이.”라고 말할 것이다.

 

삼 남매 중 장남인 기철이는 부족한 점이 참 많다. 공부도 못한다. 경주, 다혜 등 여자 친구가 넘치는 동생 기영이에 비해 숫기 없는 기철이는 여자아이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다. 보통 첫째 이름을 호칭 앞에 두는 것에 반해 기철이네 부모님은 서로를 기영이 엄마, 기영이 아빠라고 부른다. 어쩐지 소외받는 느낌이다.

 

기철이는 어릴 적 나의 모습 그대로다. 부모님은 지금은 구로 디지털 단지로 바뀐 구로 공단에서 동생을 키우며 벽돌 공장을 했고, 나는 부천에서 할머니와 살았다. 꽤 여러 해 그런 생활을 해서인지 같이 산 뒤에도 어색함은 오래갔다. 부모님 호칭 앞엔 늘 동생 이름이 붙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국민학교 시절, 희선이를 괴롭히는 것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 기철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미국에 있다고 믿는 희선이에게 “너의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있어.”라고 과격하게 말한다.

 

이 사건으로 기철이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오해다. 기철이는 실직한 아버지를 돕기 위해 신문 배달을 하고, 환등기 살 돈으로 아픈 동생에게 비싼 바나나를 사다 주는 아이다.

 

국민학교 실과 시간에 처음 만든 햄버거를 차마 먹을 수 없어 수업 끝날 때까지 곱게 싸 두었다가 동생에게 갖다준 어린 날의 나처럼 기철이도 동생을 사랑한다. “기철아, 나는 네 마음을 안다. 약한 마음을 숨기고 싶어 애쓰는 것도 말이야!”

 

이우영 님 |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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