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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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오잉이

남편 뱃살이 갈수록 부풀어 오르는 걸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온 식구에게 주말마다 오름에 오르자고 제안했다.

 

첫 등반 날, 어승생 오름을 향해 가는데 남편이 “어, 저 녀석이 왜 저기 있지?” 하며 차를 세웠다. 강아지 한 마리가 풀밭에 혼자 앉아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남편과 아들딸은 내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모르는 척하며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보아하니 집 안에서 키워야 할 텐데. 이것저것 돈도 많이 들지 않을까. 떠나 보낼 때는 또 얼마나 가슴 아플까.’ 하지만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데리고 가자.”였다.

 

등반을 포기하고 동물 병원에 데려갔다. 아픈 곳이 많은 녀석이었다.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오른쪽 입술과 잇몸이 녹아 붙었고, 이빨도 좋지 않아 네 개나 빼야했다. 풀밭에서 옮은 진드기를 없애려 약도 먹였다. 그런데 녀석은 혈액까지 침투한 진드기 유충 때문에 점점 창백해지더니 급기야 수혈을 받아야 했다. 그 며칠 내내 우리 모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차라리 사람 많이 다니는 곳에라도 두지. 한라산 중턱에 놓고 가다니?’ 누군지도 모르는 전 주인을 원망했다.

 

다행히 건강을 되찾은 녀석을 ‘오잉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차를 타고 가다 발견해서 우리가 ‘오잉!’ 하며 놀랐으니까.

오잉이는 우리 가족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자연스럽게 우리 무릎을 차지했다. 오잉이를 쓰다듬다가 멈추면 더 해 달라고 앞발로 우리 손을 끈다. 그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털은 어찌나 부드럽고, 살갗은 얼마나 따뜻한지 모른다. 오잉이를 안고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절로 사라진다. 녹아 버린 입술과 잇몸 때문에 침을 계속 흘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더이상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집 안에서 동물 키우는 걸 꺼리던 내가 오잉이의 잠자리를 조금이라도 안락하게 꾸며주고, 미리 적어 간 목록 외에 다른 물건은 절대 담지 않던 카트에 오잉이 옷과 간식을 그머니 넣을 줄 누가 알았을까.

 

남편은 아들딸을 재우던 딱 그 자세로 오잉이를 안아 노래를 불러 준다.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은 냄새에 코를 쥐면서도 배변 판을 묵묵히 치우고 오잉이의 건강을 유심히 살핀다. 열한 살 딸은 “오잉아, 누나가 있지.” “아고, 누가 그랬어?” 하면서 오잉이와 도란도란 수다를 떤다.

 

2017년 10월 14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오잉이의 생일로 정했다. 오잉이 생일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어떤 선물을 할지 즐겁게 고민할 것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버지에게 오잉이의 선물을 달라고 편지를 쓴 것처럼 말이다.

 

오잉이가 있어서 좋다. 유기견을 입양했으니 복받을 거라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에겐 오잉이 자체가 이미 복이다. 참, 운동이라면 질색하던 남편이 오잉이와 산책하며 얼떨결에 운동하는 건 덤이다!

 

김효숙 님 | 제주도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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