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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오 나의 슈퍼
2018.02.09   조회수 : 1,477    댓글 : 0개

이사한 지 어언 일 년이 지났다. 이곳은 내가 초등학생 때까지 이모네가 살았던 동네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들른 기억이 난다.

당시 이모네는 차 한 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골목에 있는 벽돌집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어릴 땐 이모가 시골에 사는 줄 알았다.

십오 년이 지난 지금 이 동네에는 높은 아파트와 흰색 건물이 잔뜩 들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것들도 있다. 목욕탕과 제과점 그리고 슈퍼다. 편의점이 아닌 슈퍼. 특히 우리 집 앞 현대슈퍼는 내가 이 동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사 온 첫날, 물을 사러 슈퍼에 갔다. 문을 열자마자 작은 종이 울리며 내가 왔음을 알렸다.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사 왔구먼.” 하며 단박에 내가 낯선 사람임을 알아챘다. 며칠 뒤 들렀을 땐 할머니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한 그 처자구먼. 새로운 동네에서 잘 살길 바랄게요!”

우리 가족을 반겨 주는 것 같았다.

 

슈퍼는 늘 새벽 다섯 시에 문을 열고, 자정에 닫는다.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셔터를 올리고 내리는 드르륵 소리가 난다. 이건 단골만 아는데, 아침잠이 없는 할머니가 새벽에 문을 열면 할아버지가 오전 아홉 시쯤 나와 바통을 이어받는다. 열두 시에 할머니가 점심밥을 챙겨 나오면 같이 식사하고 번갈아 자리를 지킨다. 저녁 일곱 시에 저녁을 먹은 다음 할머니가 먼저 들어가서 자고, 자정까지 가게를 보던 할아버지가 셔터를 내리면 슈퍼의 하루는 끝난다.

 

지난여름, 온 동네가 정전이 됐다. 안 그래도 열대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였다. 엄마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하나둘 슈퍼로 모여들었다.

슈퍼 할아버지가 마을 이장님처럼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전력 공사에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렸다. 사람들은 기술자가 올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함께 더위를 견뎠다.

 

요즘엔 슈퍼에 가기 망설여질 때가 있다. 택배 때문이다. 이사 온 후 처음 택배를 시켰는데 한참이 지나도 안 오는 거다. 이상하다 싶어서 연락하니 ‘현대슈퍼에 맡겼다.’고 했다. 맡겨 달라 한 적도 없는데 왜 거기에 있는지 의아했다.

 

“택배가 여기 있다고 해서요.”

슈퍼에 가서 얘기하자 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말했다.

“저기서 찾아가.”

할아버지는 손으로 택배함을 가리켰다. 거기엔 택배가 이미 수북이 쌓였다. 아파트처럼 경비실이 따로 없어 받는 사람이 부재중일 때 다들 이곳에 택배를 맡긴다고 했다. 우리 동네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믿을 만한 곳이라 안심되지만, 택배만 달랑 가져오기가 그렇다. 뭐라도 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다. 그래서 갈 때마다 과자 한 봉지,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 온다. 가장 덜 머쓱하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다.

 

어느덧 자정에 셔터 내리는 소리는 잘 시간을 알려 주는 알람이 됐고, 새벽 다섯 시에 문 여는 소리가 나도 더 이상 잠을 깨지 않는다.

가끔은 슈퍼에 들어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얼마 전엔 할아버지가 할머니 속을 꽤나 썩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미처 다 듣지 못한

할머니 이야기를 마저 들어야겠다.

 

최수희 님 | 경기도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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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만남] 당신에게 평화가
2018.05.08   조회수 : 881    댓글 : 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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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님 에세이] 등산보다 입산
2018.05.08   조회수 : 648    댓글 : 0개
대학 졸업 후 이력서를 준비하면서 취미를 ‘입산(入山)’이라 적었다. 진짜 취미는 독서지만 어쩐지 진부해 보였다. 등산이라 하려니 그건 또 아니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산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입산이라 했다.드문 취미 덕일까, 나는 회사에 합격했다.한 시절을 보낸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다시 설악산에 갔다. 온통 녹색인 세상에서 눈은 모처럼 휴식을 취했다. 풀 향기에 코를 킁킁거리고,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에 귀도 호강했다.그날 나를 비롯한 등산객들은 울산바위를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러다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왜 정상에 오르려 애를 쓰는가.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허기지고 현기증마저 나는 상황에서 무얼 위해 이러는가. 정작 정상에 이르렀을 때는 특별한 감명을 받지 못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드디어 다왔다. 얼른 내려가서 밥 먹어야지.’길은 정해져 있었다.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남은 거리를 알려 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여기엔다람쥐가 많이 살아요.” “쪽동백나무가 울창한 곳이에요.”라고 써 놓을 순 없었을까. 그랬다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순간을 즐길 텐데.십오 년 만에 설악산을 오르며, 그 옛날 이력서에 등산이 아닌 입산을 적은이유를 다시 이해했다. 삶을 대하는 자세도 이러하고 싶다.박은지 님 | 서울시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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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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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평탄한 나의 인생에 절체절명의 사건이 일어났다.스물아홉 여름날, 친구들과 이십 대 마지막을 기념하며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학창시절에 했던 캠프파이어가 생각나 모닥불을 피웠다. 그런데 잔잔하던 불씨가 갑자기 확타올라 나는 얼굴에 3도 화상을 입고 말았다. 곧장 응급실에 실려 가 치료하고 피부 이식도 몇 차례 받았으나 사고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 오른뺨은 화상 흉터로 뒤덮였다.매일 밤 모든 게 꿈이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잠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에 둔 손거울로 얼굴을 비춰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세 평짜리 방에서 누워만 지냈다. 한 달즈음 지났을까, 멀뚱히 천장만 바라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신창이가 된 건 내얼굴이 아닌 마음이라고.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아파트를 나섰다. 놀이터 쪽으로 걸어가는데 몇 발자국 안되는 거리가 왜 그리 멀게 느껴지는지. 죄인처럼 땅만 보며 걸었다. 그때 누군가 내 팔을 잡으며 말을 걸었다.“처녀, 길 좀 물읍시다.” 큰 보따리를 진 아주머니였다.“네? 저요?”놀란 나와 아주머니의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놀라기는커녕 “우리 아들네 왔는데 112동이 어디예요? 찾기가 어렵네.”라며 거리낌 없이 길을 물었다. 당황한 건 나였다. “이,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 나는 엉거주춤 서서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아주머니는 “응? 어디?”라며 재차 길을 물었고 결국 나는 112동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아주머니의보따리도 함께 들었다.우리는 오 분 남짓 걸으며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낸 듯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아주머니는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만감이 교차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두 번 다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할 거라며 숨어 지내던 내게 얼굴흉터쯤은 개의치 않고 다가온 아주머니가 고마워서.그분을 다시 만나면 말하고 싶다. 덕분에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었노라고. 나 또한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 본다.양승선 님 | 경기도 화성시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고양이의 농사법
2018.05.08   조회수 : 1,052    댓글 : 1개
새벽에 불을 켜자 돈벌레 몇 마리와 거미들이 몸을 감춘다. 이 녀석들은 특별하게 피해를 주지 않기에 죽이지 않고 그냥 둔다. 설령 피해를 주는 벌레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어느 생명체 건 목숨과 목숨은동등하다.닭 울음소리와 범종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온다. 종소리는 규칙적이고 새벽닭 소리는 함부로 흩어진 수은 구슬 같다. 매화도 지고 목련꽃도 졌다. 수선화도 지고, 패모꽃도 이울었다. 골담초와 보리수의 철이다.오랜만에 집 안을 둘러본다.이 집에는 참 많은 것이 산다. 아내와 내가 집의 주인이라고 등기를 해두었지만, 실제로 이 집의 주인은 풀과 나무와 곤충과 쥐나 뱀, 고양이와새들이다.그들이 더 오래 머물고, 그들이 더 많이 사용한다. 다 따서 모으면 한말은 족히 나올 보리수 열매는 곤줄박이나 뱁새들의것이고, 살구나 매실은 까치들이 독차지한다. 홍시는 산까치, 고구마는 두더지가 주인이다. 등기상 주인들이 열매를 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것은 ‘꼭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꼭 필요한 이들이 가져가게 해야 한다’는 아내의 철학이반영된 결과다.누군가 준 목련꽃 차가 마실 만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목련 나무가 활짝 꽃 피웠을 때 “목련꽃 차를 만들까?” 하였더니, “뭐하러 그래요. 저도 저 꽃 피우느라얼마나 애썼을 것인데…….” 아내의 그 한마디에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농사를 본업으로 하지 않는 가짜 농부인지라, 밭이고 공터고 간에 심고 싶은것을 조금 심고는 방치하였다. 그러다 보니 키 높이로 풀이 자라는 건 보통이었다.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마당의 잔디밭을 예초기로 한 번씩 미는 정도였다.마당에는 수시로 뱀이 지나다니고, 다양한 종류의 거미가 온갖 곳에 집을 쳤다.한번은 작은 뱀이 거미줄에 걸려 살려 준 적도 있다.수시로 드나드는 고양이들은 쥐나 뱀을 잡아서 현관 앞에 선물로 놓기 일쑤였고, 두더지들은 나보다 부지런히 밭을 갈아 두었다. 비 온 뒤면 두꺼비가 뛰룩뛰룩 눈을 굴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허술하게 지었던 닭장의 닭을 족제비가채 갔지만 닭장을 보수한 후 키운 닭이 날마다 알을 내어 준다.닭 울음소리가 잠잠해지면 꿩이 꿩꿩 하면서 허공을 가른다. 새벽 새들의 출현 시간에도 순서가 있다. 큰 새들이 먼저 소리를 낸 후 작은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한다. 이윽고 해가 뜰 무렵이면 가장 작은 새들이 햇살 쪼가리 같은 소리를 쫀다. 이 집에 오는 새의 숫자를 다 헤아리면 수백 마리는 족히 된다. 인근에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더 늘어났다. 새가 많아진 후 집 안 과일나무에서 열매 따는 것을 멈추었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니, 그것을 더 필요로 하는 자가 먹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작년 초에 두둑을 완성했다. 그 가을에 두둑마다 다른 채소를 심었더니 잘 자랐다. 두 두둑의 배추는 봄동으로 먹으려고 아껴 두었으나, 누군가가 하나둘씩싹둑 잘라 가더니, 오십 포기 가까운 봄동이 다 사라졌다. 그래도 손님이 왔을때 우리 가족도 한 포기는 맛을 봤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잘라 갔을 것이다. 봄동이 없어도 두둑마다 들나물이 넘쳤다. 참나물과 당귀와 재래 당귀와 방아와 무들이 있었다. 그중 시금치가 특히 잘 자랐다. 작은 두둑하나인데, 왕성히 자란 그것들은 한 식구가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으려고 시금치 잎을 수확했더니 열 묶음도 더 되었다.“어쩌다 당신이 시금치 농사는 잘 지으셨네요?”아내가 말했다. 나는 빙그레 웃음으로 대답했다. 시금치 농사가 유독 잘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두둑을 만들고 씨만 뿌려 두었지, 농사는 고양이가 지었다. 작년 가을 시금치를 심은 뒤에 보니 집을 드나드는 고양이 녀석들이 유독 그두둑에다 똥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걸 안 나는 시금치 두둑 옆에 고양이가 먹을만한 것들을 부지런히 갖다주었다. 고양이는 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쥐나 뱀등)을 선물로 주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필요로 했던 시금치를 선물로 듬뿍 준 것이다.올가을에는 시금치를 심었던 두둑에 무얼 심을까. 고민이 굼실굼실 아지랑이처럼 고무락거리는 늦봄이다.이대흠 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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