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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눈이 내리면 어머니가 온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고등학교에 가는 줄 알았다. 한데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리니 형을 불러 나를 데리고 서울로 가라고 했다.

 

내 고향은 버스가 하루 세 번 다니는, 신작로에서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외진 동네였다. 세 가구뿐인 주민은 한 가족같이 어울려 지냈고, 병풍처럼 둘러 싸인 산은 계절마다 먹을 것을 풍성하게 내주었다. 그래서 순박한 마음과 넉넉한 정을 지니고 살았다. 그 정겨운 곳을 떠나야 한다니.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읍내에 나가 표를 끊어 왔다. 동네 형, 누나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서울로 가기 전날 밤, 툇마루에는 보따리들이 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콧잔등에 얼음이 맺히는 것도 모른 채 분주했다. 내겐 눈길도 주지 않고, 무얼 물어봐도 시큰둥하게 말하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아쉬움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한껏 들뜬 어머니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오메, 이것이 뭔 일이다냐. 아따 겁나게 내려브네이.” 방문을 여니 굵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당에 선 어머니를 눈사람으로 만들 기세였다. 눈이 발목까지만 쌓여도 버스가 다닐 수 없는데, 그날은 토방을 다 덮을 만큼 내렸다. 어머니는 보따리에 싼 음식이 상하겠다고 푸념하면서도 목소리는 밝았다. 서울로 가는 날은 보름이나 미뤄졌다. 그간 나는 어리광 부리며 어머니 냄새를 맘껏 맡았다.

 

함박눈을 맞으며 자식을 며칠 더 품을 수 있는 기쁨에 들떴던 어머니. 지금도 눈이 내리면 그해 겨울 어머니의 모습이 내 가슴을 두드린다.

 

우정광 님 | 대구시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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