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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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이 일을 어쩌나

그와 나는 어릴 적부터 한동네에서 보던 사이였다. 우리 동네에 그의 큰집이 있었는데 방학이나 명절이면 그와 사촌들이 왔다. 그들 형제가 오면 동네 아이 모두 한 무리가 되어 뛰놀았다. 세월이 흘러 중학교에 입학한 뒤론 만날 기회가 뜸해졌다. 그의 큰어머니와 동네 친구였던 어머니를 통해 간간이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나는 뒤늦게 꿈을 찾아 나섰다. 대학을 나와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 역시 회사에 취직해 열심히 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선을보긴 하는데 번번이 퇴짜를 놓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 나 역시 어머니 성화에 선을 보러 다녔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남몰래 집에서 독립할 생각만 하던 터였다. 방학 중 친구와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오는 길,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그 차림 그대로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나갔다. 찻집에는 그가 앉아 있었다. 첫눈에 알아볼 만큼 어릴 때 모습 그대로였다. 

 

다른 자리에는 그의 부모님과 친척들이 앉아 우리를 훔쳐보았다. 어색한 만남이었다. 어쨌든 서로 결혼할 뜻이 없었던 터라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양쪽 부모님의 기대가 높았고 계속 결혼 독촉에 시달리는 게 지겨웠다.

 

우리는 서로 마음에 드는 척 합의하고 데이트를 시작했다. 마음이 없으니 상대 눈치를 보지 않고 평소대로 행동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그러다 보니 싸움과 갈등이 잦았으나 겉으론 잘 만나는 듯 양가 부모님을 속였다. 노처녀, 노총각이 마음 맞아 잘되어 간다고 판단한 부모님들은 3개월 만에 덜컥 결혼식 날을 잡아 우리에게 통보했다.

 

그제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각자 부모님에게 서로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고집 세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요. 좋은 며느릿감은 아니에요.” “그 사람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아요. 게다가 얼마나 가부장적인지 몰라요.” 그러나 부모님은 이미 친척과 지인에게 알려서 돌이킬 수 없다며 청첩장을 내밀었다. 이 일을 어쩌나!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그를 배우자로 맞아들여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노랗고 눈앞이 깜깜했다. 

 

그도 내 마음과 똑같다고 했다. 우리는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바닷가에서 함께 밤바람을 맞으며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하느냐고 분개했다. 겉으로만 만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진심으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보지 못한 그의 진솔하고 성실한 면을 조금씩 알았다. 그는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라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 알뜰한 경제관념을 가졌다.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형제간의 우애도 깊었다. 그는 내가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현혹되지 않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당당한 태도가 좋다고 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28년째 부부로 산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존중하며 알콩달콩 재미나게 지낸다.

 

이연순 님 | 부산시 영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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