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햇살 마루] 곁을 준 사람
2018.01.08   조회수 : 2,285    댓글 : 1개

이제 다섯 살이 되는 딸아이는 잠들기 전에 종종 책을 들고 내 방으로 와서는 읽어 달라 한다. 어느 날 함께 책을 읽는데 폭풍우와 번개가 나왔다. 아이가 번개를 무서워하기에 나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며 달랬다. 번개가 치는 날이면 불꽃놀이를 보듯 아빠와 함께 보자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겁먹고 쓸쓸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때 아빠가 없으면 어떡해?” 나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일 무렵 트럭 행상을 시작했다. 워낙 소농이었던 터라 농사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유일했던 두어 마지기의 논을 팔아 버린 뒤 1톤 중고 트럭을 구입했다.

 

트럭 행상이 만만할 리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트럭을 몰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았지만, 농사를 짓던 때보다 살림이 나아지기는커녕 외려 기우는 듯했다. 아버지의 실패를 증명이라도 하듯 집 안 곳곳에 팔지 못한 물건만 쌓여 갔다. 옷, 그릇, 신발 따위가 쌓이는 건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이 모든 실패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아버지는 트럭 짐칸에 닭장을 짜고 닭을 팔러 다녔다. 그 닭의 대부분은 우리 집 닭장에서 늙어 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아버지는 트럭 짐칸에서 닭장을 헐어 내고 커다란 함지박에 닭 내장을 싣고 다녔다. 가스통에 주물 버너를 연결해 솥까지 얹었다. 이 장사가 시원찮았던 건 우리 식구에게 재앙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남은 닭 내장을 처분할 사람은 우리뿐이었기에 하루 세 끼를 닭 내장 볶음으로 때웠다. 얼마 못 가 닭이라는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춘기를 지나는 터라 무척 신경질적이었던 나는 기울어 가는 집안 형편이 한심하다 못해 불쑥불쑥 화가 치밀곤 했다. 이러다가 정말 집안이 꼴깍 몰락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두어 번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의 조수 노릇을 하며 트럭 행상을 따라다닌 적이 있었기에 아버지가 장사에는 영 젬병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트럭을 처분하고 오롯이 농사만 짓던 시절로 되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식구를 먹여 살려야했기에 실패를 거듭해도 부단하게 새로운 상품을 물색했다.

 

어느 해 초겨울, 감기에 걸린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를 따라나서야 했다. 아버지가 김장철 대목을 노리고 젓갈을 다루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깨어나 보니 이제 막 자정을 넘긴 참이었고 바깥은 옴팡지게도 추웠다. 조수석에 오른 나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아버지가 졸음을 몰아내려는 듯 이따금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문지르는 걸 보았다. 두어 시간을 달려 여수 수산 시장에 도착했을 때에도 여전히 어둡고 차가운 새벽이었다. 아버지가 경매로 젓갈을 구입하는 동안 나는 조수석에 그대로 남아 달달 떨면서 자다 깨다를 되풀이했다.

 

어느새 희부옇게 먼동이 터 왔고 트럭 짐칸에 여러 종류의 젓갈 상자가 그득 쌓였다. 그때부터 장사는 시작인 셈이었다. 여수에서 집까지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국도 변 모든 마을에 들러 젓갈을 팔았다. 마을 회관에 트럭을 세우면 아낙들이 나와 젓갈을 살펴보며 흥정을 했고, 거래가 이뤄지면 아버지와 나는 젓갈 상자를 어깨에 지고 그 집 부엌까지 옮겨다 주었다. 젓갈 장사는 제법 성공적이어서 오후 무렵에는 몇 상자밖에 남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이미 젓갈 냄새에 흠뻑 젖었다.

 

어느 마을에서 눈 밝은 아주머니 한 분이 물었다. “오메, 아저씨! 손가락은 어찌된 거라우?”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고 곁눈질로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의외로 흔흔했다. “탈곡기에 먹혔어라우.” 혀를 차던 아주머니는 나를 힐끔 보았다. “아들이어라?” “예, 아들이어라.” “아따, 야무지고 똑똑허게 생겼다. 든든허시겄어라.” 그 말치레에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아버지의 얼굴은 오후의 식은 햇살 아래서도 유난히 해사했다.

 

겨울 해는 짧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두웠으나 아버지는 트럭 짐칸이 텅텅 비었으므로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하는 어부처럼 흥겨워했다. 나는 귓가에 맴도는 아주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를 곱씹었다. 문득 그날 새벽 아버지가 경매로 젓갈을 구매하는 동안 조수석에 혼자 남아 자다 깨다를 되풀이하면서도, 어둠에 잠겼던 바다가 기지개를 켜며 부풀어 오르는 걸 보았음을 깨달았다. 운전석에 올라타던 아버지에게서 이미 물씬 밴 젓갈 냄새를 맡았던 것도 깨달았다. 잠든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홀로 트럭 짐칸에 그 많은 젓갈 상자를 실었던 아버지,젓갈 냄새를 조금이라도 털어 버리기 위해 차가운 바깥에서 한동안 바람을 맞으며 기다렸던 아버지, 그러면서 조수석 차창으로 잠든 나를 들여다보았을 아버지가 선연히 떠올랐다.

 

내가 잠든 동안에도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는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비몽사몽간에 아버지와 시선을 맞추고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거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옆얼굴을 보았다. 아버지는 멀리 떠나는 중이었다. 탈곡기에 손가락을 잃은 뒤 천천히 조금씩 거기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섭고 쓸쓸해서 다시 갈 수가 없는 거였다. 다시는 손가락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떠나온 그곳, 오롯이 농사만 짓던 시절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움을 품은 채 당신이 잘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트럭 행상이라는 미지의 세월로 끈질기게 항해해 가는 중이었다.

 

손홍규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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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유난엽
20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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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한자,스치는것이 아니라 회전목마타고 글속으로 돌아 마음가득! 뜨거움으로 달아올라 얼굴까지 열이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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