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햇살 마루] 곁을 준 사람
2018.01.08   조회수 : 2,143    댓글 : 1개

이제 다섯 살이 되는 딸아이는 잠들기 전에 종종 책을 들고 내 방으로 와서는 읽어 달라 한다. 어느 날 함께 책을 읽는데 폭풍우와 번개가 나왔다. 아이가 번개를 무서워하기에 나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며 달랬다. 번개가 치는 날이면 불꽃놀이를 보듯 아빠와 함께 보자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겁먹고 쓸쓸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때 아빠가 없으면 어떡해?” 나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일 무렵 트럭 행상을 시작했다. 워낙 소농이었던 터라 농사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유일했던 두어 마지기의 논을 팔아 버린 뒤 1톤 중고 트럭을 구입했다.

 

트럭 행상이 만만할 리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트럭을 몰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았지만, 농사를 짓던 때보다 살림이 나아지기는커녕 외려 기우는 듯했다. 아버지의 실패를 증명이라도 하듯 집 안 곳곳에 팔지 못한 물건만 쌓여 갔다. 옷, 그릇, 신발 따위가 쌓이는 건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이 모든 실패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아버지는 트럭 짐칸에 닭장을 짜고 닭을 팔러 다녔다. 그 닭의 대부분은 우리 집 닭장에서 늙어 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아버지는 트럭 짐칸에서 닭장을 헐어 내고 커다란 함지박에 닭 내장을 싣고 다녔다. 가스통에 주물 버너를 연결해 솥까지 얹었다. 이 장사가 시원찮았던 건 우리 식구에게 재앙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남은 닭 내장을 처분할 사람은 우리뿐이었기에 하루 세 끼를 닭 내장 볶음으로 때웠다. 얼마 못 가 닭이라는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춘기를 지나는 터라 무척 신경질적이었던 나는 기울어 가는 집안 형편이 한심하다 못해 불쑥불쑥 화가 치밀곤 했다. 이러다가 정말 집안이 꼴깍 몰락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두어 번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의 조수 노릇을 하며 트럭 행상을 따라다닌 적이 있었기에 아버지가 장사에는 영 젬병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트럭을 처분하고 오롯이 농사만 짓던 시절로 되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식구를 먹여 살려야했기에 실패를 거듭해도 부단하게 새로운 상품을 물색했다.

 

어느 해 초겨울, 감기에 걸린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를 따라나서야 했다. 아버지가 김장철 대목을 노리고 젓갈을 다루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깨어나 보니 이제 막 자정을 넘긴 참이었고 바깥은 옴팡지게도 추웠다. 조수석에 오른 나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아버지가 졸음을 몰아내려는 듯 이따금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문지르는 걸 보았다. 두어 시간을 달려 여수 수산 시장에 도착했을 때에도 여전히 어둡고 차가운 새벽이었다. 아버지가 경매로 젓갈을 구입하는 동안 나는 조수석에 그대로 남아 달달 떨면서 자다 깨다를 되풀이했다.

 

어느새 희부옇게 먼동이 터 왔고 트럭 짐칸에 여러 종류의 젓갈 상자가 그득 쌓였다. 그때부터 장사는 시작인 셈이었다. 여수에서 집까지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국도 변 모든 마을에 들러 젓갈을 팔았다. 마을 회관에 트럭을 세우면 아낙들이 나와 젓갈을 살펴보며 흥정을 했고, 거래가 이뤄지면 아버지와 나는 젓갈 상자를 어깨에 지고 그 집 부엌까지 옮겨다 주었다. 젓갈 장사는 제법 성공적이어서 오후 무렵에는 몇 상자밖에 남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이미 젓갈 냄새에 흠뻑 젖었다.

 

어느 마을에서 눈 밝은 아주머니 한 분이 물었다. “오메, 아저씨! 손가락은 어찌된 거라우?”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고 곁눈질로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의외로 흔흔했다. “탈곡기에 먹혔어라우.” 혀를 차던 아주머니는 나를 힐끔 보았다. “아들이어라?” “예, 아들이어라.” “아따, 야무지고 똑똑허게 생겼다. 든든허시겄어라.” 그 말치레에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아버지의 얼굴은 오후의 식은 햇살 아래서도 유난히 해사했다.

 

겨울 해는 짧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두웠으나 아버지는 트럭 짐칸이 텅텅 비었으므로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하는 어부처럼 흥겨워했다. 나는 귓가에 맴도는 아주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를 곱씹었다. 문득 그날 새벽 아버지가 경매로 젓갈을 구매하는 동안 조수석에 혼자 남아 자다 깨다를 되풀이하면서도, 어둠에 잠겼던 바다가 기지개를 켜며 부풀어 오르는 걸 보았음을 깨달았다. 운전석에 올라타던 아버지에게서 이미 물씬 밴 젓갈 냄새를 맡았던 것도 깨달았다. 잠든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홀로 트럭 짐칸에 그 많은 젓갈 상자를 실었던 아버지,젓갈 냄새를 조금이라도 털어 버리기 위해 차가운 바깥에서 한동안 바람을 맞으며 기다렸던 아버지, 그러면서 조수석 차창으로 잠든 나를 들여다보았을 아버지가 선연히 떠올랐다.

 

내가 잠든 동안에도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는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비몽사몽간에 아버지와 시선을 맞추고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거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옆얼굴을 보았다. 아버지는 멀리 떠나는 중이었다. 탈곡기에 손가락을 잃은 뒤 천천히 조금씩 거기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섭고 쓸쓸해서 다시 갈 수가 없는 거였다. 다시는 손가락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떠나온 그곳, 오롯이 농사만 짓던 시절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움을 품은 채 당신이 잘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트럭 행상이라는 미지의 세월로 끈질기게 항해해 가는 중이었다.

 

손홍규 님 | 소설가

 

 

댓글 (1)

유난엽
2018.01.20
삭제
한자,한자,스치는것이 아니라 회전목마타고 글속으로 돌아 마음가득! 뜨거움으로 달아올라 얼굴까지 열이 전해졌습니다! 

같은 카테고리의 글들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파릇파릇 행진
2018.07.09   조회수 : 1,152    댓글 : 0개
“너뜰, 좀 하네!” 양상추 작업장에서 일하는 김종혁과 작업반장 이태호, 격투기 선수 출신 김진홍과 재첩 잡는 어부 김태우. 덩치로 보나 말발로 보나 선배 같은 신입 넷이서 똘똘 뭉쳤다. 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작업하다 꽁꽁 언 손으로 야구공을 쥐었고, 전국으로 배송할 재첩 국을 펄펄 끓이다가 야구장으로 달려왔다. 몸무게 백 킬로가 넘는 진홍은 쌀 도정을 하다가 손바닥에 허연쌀가루가 묻은 채로 공을 잡았다.보청기를 끼고도 잘 듣지 못하는 종혁은 눈이 좋다. 운동 신경이 둔해 아직야구 방망이를 들 실력은 못 돼도, ‘오늘의 경기’를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깨알같이 기록한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좋아서 했다는 기록에 투수도, 삼루수도,유격수도 긴장한다. 눈치코치 없는 종혁 덕에 우리는 자주 볼 빨개지는 무안함을 경험한다. 그래도 다 맞는 말, 감독 대신 하는 말 같기도 하고 단장의 속을 시원하게 긁기도 하고.이종 격투기를 했다는 거구 진홍은 야구단에 오자마자 포수를 한다. 보호장비를 쓰고,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두어 시간 하면서도 “뭐, 이것쯤이야.” 하며 큰 눈으로 웃기만 한다. 시원하게 이기고 있는 경기엔 신입에게도 타격의 기회가 주어진다. 겨울 내내 양상추밭에서, 섬진강에서, 정미소에서 이순간만을 위해 타격 연습을 한 신입들. 물먹고도 행진, 파릇파릇 행진, 아삭아삭 행진.진홍의 등장에 상대 팀은 비상이다. 멀리멀리 홈런 칠까 싶어 “외야로, 외야로.” 하며 수비 강화. 9번 타자인데도 4번 타자처럼 상대 팀이 긴장하는 이유는저벅저벅 걸음만으로도 롯데의 이대호 선수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첫 스윙에 실력을 들키면 “안으로, 안으로.” 하며 수비는 다시 제자리.사회인 야구단 ‘어쭈구리.’ 신입생이 있어 더 생생하고 싱싱하다. 이기거나 진지한 것도 좋지만 처음처럼 모르고 서투르면 어때. 한 잎 한 잎 모여 단단하고맛있게 자라는 양상추처럼, 작지만 야무진 동그라미를 그리는 야구공처럼 우리도 잘할 수 있을 텐데.“형, 형, 우리 좀 해요!”석민재 님 | 시인, 어쭈구리 야구단 회원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냉동 잠옷
2018.07.09   조회수 : 1,257    댓글 : 3개
서울 사는 딸과 막내아들한테 다녀오려고 짐을 꾸렸다. 자식들에게 줄 것을싸다 보면 이리저리 뒤섞이기 일쑤였다. 막내가 즐겨 먹는 생선은 얼려서 넣고,사흘 우린 사골 국에 각종 밑반찬, 새로 담근 고추장과 갖은 양념까지 올망졸망 챙겼다. 행여 터질까 싸고 또 싸고, 하나라도 더 넣으려 꾹꾹 눌렀다. 꼬박한나절이 걸렸다.바리바리 싸 들고 나선 길, 택시와 버스를 갈아탔다. 도착해서 보따리를 푸니 가관이었다. 짐작으로 냉동실, 냉장실, 옷장에 넣을 것을 나누어 정리했다.한데 다음 날, 딸이 물었다. “참, 내 잠옷은요?” 직접 재봉해 만든, 시원하고예쁜 여름 잠옷. 그제야 “아차!” 하고 여기저기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넣었는데…….” 종일 온 집을 헤집어도 나타나지 않아 지쳐 포기했다. “정신없는 내가 흘리고 왔나 보다.” 하고 말았다.한 달이 지났다. 싸 간 것들이 어느새 동나 냉장고가 비었다. 남은 재료로 뭘 해 줄까 하다 냉동실에서고기 한 덩어리를 집었다. 한데 느낌이 이상했다. ‘시래기인가? 말린 토란대인가?’ 펴 보니 아뿔싸, 그렇게나 찾은잠옷이었다. 얌전히 개어 포장한 그대로였다. 한 달 내내 냉동실에 있었다니,상상도 못했다. 이후 그 옷 이름은 ‘냉동 잠옷’이 되었다. 지금도 뭘 찾다 없으면 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친다. “엄마, 혹시 또 냉동실에 있는지 보세요.”정경애 님 | 경기도 용인시
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어려운 자리
2018.07.09   조회수 : 1,498    댓글 : 5개
눈을 뜨자마자 ‘망했다’고 생각했다. 휴대 전화를 확인하니 “그냥 나오지 마.”라는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가지 말까, 그래도 갈까.’ 고민하다 튕겨지듯 나와 택시에 올랐다. 학동역에서 일산까지 가야 했다. 일산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올 즈음 기사 아저씨가 어디쯤에서 내리겠느냐고 물었다. 다시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냥 서울로 돌아가 주세요.” “예?” “서울이요.” 왈칵 눈물이 났다. 택시 기사는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무슨 일 있어요?”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했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며 사정을 이야기했다.“전 영화 팀 막내인데, 첫 작품이라 일도 잘 못하고 매일 집에 가라는말만 들어요. 새벽 다섯 시에 가야 했는데 휴대 전화 전원이 꺼져서 알람을 듣지 못하고푹 잤어요. 마지막 연락이 오지 말라는 거였어요. 지금 가 봤자 돌아가라고 할 거예요. 진짜 열심히 했고, 잘해서 성공하고 싶었는데……. 제가 다 망쳤어요.”기사는 말없이 내 얘기를 듣더니 입을 열었다.“학생, 성공하고 싶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줄까?”눈이 번쩍 뜨였다. 눈물도 멈췄다.“어려운 자리에 가야 해. 돈을 갚지 못해도 빌려준 친구를 만나고,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지만 가시방석에 앉는 거야. 피하는 게 쉬운 거 같지? 그 순간엔 그래도, 지나면 ‘그때 피하지 말아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들 거야. 힘든 걸 하는 순간 많은 게 달라지거든.”고개를 숙인 채 생각해 봤다. 피하는 것과 부딪히는 것.“나도 예전에 회사를 다녔거든. 그때 사람들 참 많이 혼냈어. 근데 철칙이 있었지. 먼저나한테 오는 걸음걸이를 봐. 뭐 잘못한 게 있으면 천천히 오더라고. 아까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이제 온다는 건 내내 고민했다는 거야. 그런 사람한테는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쳐다만 봤지. 할 말이 뭐가 있겠어. 잘못은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피식 헛웃음이 났다. 내가 그랬다.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이미 도착할 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가고 싶었다.“한 소리 듣고 딱 그래.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다음에 잘하겠습니다. 그러면 상대도 미칠 노릇이지. 죄송하다고 다음에 잘한다는데 뭐라 그럴 거야.”“저를 워낙 미워하셔서.”“일 못하는데 그럼 좋겠어? 근데 오늘 안 가면 그 사람들은 영영 못 보는 거야. 오늘 가서 ‘죄송합니다.’ 하면 이번에 잘린다 해도 다음은 있지.”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팀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다짜고짜 어디냐고 물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고개를 조아리며 연신 “죄송해요. 다 왔어요.” 하고 굽실거렸다.빨리 오라는 고함을 들으며 내달렸다.나는 그날 잘리지 않았지만, 종일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일 줄 안그날은 조금 더 힘들었던 하루로 무사히 지나갔다.이제 나는 막내가 아니다. 우습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무서운 상사가 되었다. 이따금씩택시에서 급히 뛰어내리는 막내들을, 그날의 나를 만난다. 그러면 나는 ‘저 친구들도 좋은기사님을 만났나 보네.’ 하고 생각한다.백성혜 님 | 서울시 강남구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마가렛과 오동나무
2018.07.09   조회수 : 1,302    댓글 : 1개
지난해 겨울이었다.“겨울에 차를 더 자주 마셔요. 달걀도 많이 먹고요.”장작 난로 위 낡은 주전자에서 물이 끓고 있었다. 다른 계절에는 물 끓이는 전깃값이 아까워 차도 달걀도 별로 먹지 않는다는 말이다.이미 날이 충분히 저물었다.“왜 불을 안 켜세요?”“아직 볼 만하잖아요.”나는 답답했지만 조금 더 참아야 했다.안방에는 혼자 누울 자리에만 전기담요가 자리 잡고 있었다.“지난 추위에 하수도가 얼어 버렸어요. 수리비가 많이 들어 봄까지 기다리기로했어요. 봄이 오면 막힌 관이 뚫리겠지요. 난 겨울이 좋아요.”옷은 늘 비슷하거나 같다. 의자에 걸어 둔 옷을 한번 들어 보았더니 생각보다훨씬 무거웠다.“장수 읍내 시장에서 만 사천 원에 샀어요. 참 따뜻해서 좋아요.”처음 만났을 때 값이 조금 나가는 목도리를 선물로 내밀었다.“가져가세요. 이런 비싼 건 불편합니다. 시장에서 산 오천 원짜리 목도리가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나는 포장도 뜯지 못한 채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그녀는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한다. 사랑의 숭고함 때문이기도하지만 자신이 아직도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다.그녀는 우리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진주에서 귀한 외동딸로 태어났다. 간호 학교를 거쳐 간호사로 독일에 갔다. 그곳 병원에서 온갖 힘들고 궂은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밝았다. 그러고는 그곳의 한국인과 결혼을 했고, 2남 1녀를 두었고, 식당을 차렸고,내친김에 조그만 호텔까지 운영했다. 잘되었다. 아니 잘했다. 아니 무조건 열심히 했다.어느 날, 파란만장한 자신의 과거와 호텔과 모든 자산을 정리하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장수군의 한 나지막한 마을 언덕에조그만 집과 사과밭을 마련했다.“사과 농사는 다른 사람이 짓고 있는데 한가지 조건이 있었어요. 사과나무에 약을 치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어느덧 여름이 왔다. 일흔이 넘었지만 갈수록 몸이 좋아지고 있다. 마당가에 하얀 마가렛이 무리 지어 피어 있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이 어쩌면 저렇게 예쁘냐며 눈을 떼지 못한다. 제법 큰 오동나무 한그루도 그늘을 넓고 짙게 펼치고 있다.그녀는 내가 쓴 《사랑의 인사》를 무척 좋아한다. 날마다 하나씩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글을 썼냐’고 묻고 또 물었다. 그러면서스스로 대답했다.“정 선생과 내가 같은 경험을 많이 했나봐요.”그러면서 여러 번 이렇게도 말했다.“이 책에 더 이상 손대면 안 돼요. 더 이상나올 게 없고 나올 필요도 없어요. 깊은 마음을 글로 꺼내 놓은 거예요. 따뜻하게 끌어내 주었어요.”겨울 어느 날, 친구 직원과 장수에 갔을때였다.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그녀얼굴이 빨갰다.“오늘은 정 선생이 와서 그런지 얼굴이 빨갛네요?”“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정 선생한테 안 좋아요.”말은 부드러웠지만 냉엄한 경고였다. 얼굴이 빨개진 건 난로 때문이었지만, 잘못된 칭찬은 사람을 버린다는 뜻이었다.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넋을 잃는다. 그런중에도 나는 한마디도 놓칠 수 없다. 한마디한마디가 명언이고 지혜다.“말이 중요하다, 언어가 정확해야 한다.”“어지러운 세상 내가 감수하면 자유로워진다.”“정치는 말 공장이다. 멀리하라.”“쉬운 것은 늘 도움이 안 된다.”“자기가 하는 것만큼 남도 그럴 줄 안다.”“겨울을 좋아하면 추위를 이길 수 있다.”“좋다고 생각하면 자기 것이 된다.”“부족함이 많다고 느끼기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것은 집중했기 때문이다.”“모든 것이 내 삶이다. 불편해하지 말자.”“몸을 움직여라. 그러면 스스로 치유된다.”그녀는 《사랑의 인사》 1만 5천 207부,「좋은생각」 24만 부 이상을 교도소, 다문화 가정, 문해 학교, 초·중·고 교사와 학생 등에게 어떤 조건도 부담도 없이 보내주었다.내가 물었다.“한두 번은 몰라도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하세요?”“두 분의 아버지가 보고 계시잖아요. 육신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버지.”그녀를 두고 대단하다거나 위대하다거나 숭고하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아름답다고 하면 어떨까? 아마 이 말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높이면 불편해하기 때문이다.자연스럽다. 그녀는 그냥 그렇게 산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게 살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충만한 기쁨이다. 생명력이다.비단 박순련 님뿐이겠는가? 좋은님 한 분 한 분이 이렇게 살고 있다. 그들은 좋은 삶을 살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이상도 도덕도 양심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산다. 원래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조용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 내는 것이다. 무엇이 이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답겠는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정용철 「좋은생각」 발행인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