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특집] 오줌 샤워
2018.01.04   조회수 : 1,523    댓글 : 3개

결혼 전, 다른 집 아이들은 쑥쑥 잘만 자랐다. 주는 대로 먹고, 피곤하면 스르르 자고, 혼자서도 잘 놀고. 아이는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밥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아 주고, 안아서 재우고……. 모두 해줘야 했다. 

 

신생아 때는 기저귀 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뒤집거나 움직일 수 없으니 수월했다. 하지만 돌이 지나고 말귀를 조금씩 알아들으면서 힘에 부쳤다. “기저귀 갈자.” 이 말을 하는 동시에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벗어났다. 간신히 잡아 기저귀를 갈려고 하면 온몸을 비틀며 빠져나갔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아빠랑 놀까?”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오면 ‘기저귀 갈기 놀이’를 했다. 아이도 놀이로 받아들였는지 더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그렇게 차츰 배워 갔다. 아이가 자라면서 기저귀 가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더욱 주의할 일이 생겼다. 바로 오줌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이의 기저귀를 벗겼다. 그 순간 오줌 발사!
“으악!”


설거지하던 아내는 큰일이 난 줄 알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러곤 별일 아니라는 듯 “아들 오줌인데 뭐 어때요.” 하고 말했다. 아이 역시 해맑은 모습으로 온 집 안을 돌아다녔다. 나는 얼굴을 닦지도 못한 채 아이를 잡으러 갔다. 아이의 오줌 샤워는 유독 나에게만 자주 일어났다. 몇 번 당하니 요령이 생겼다. 최대한 팔을 펴고 얼굴을 뒤로 젖혀 아이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거다. 공격을 피하자 아이도 포기했는지 잠잠해졌다.


어느 토요일 저녁,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오라고 했다. “당신도 같이 가는 거지?” “둘이 오붓하게 다녀와요. 나는 치과 예약했어요.” 아이 용품이 든 가방을 메고, 아이를 앞으로 안았다. 아내가 적어 준 물건을 하나하나 카트에 담는데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배고픈가 싶어 얼른 우유를 물렸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썩 편안하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하며 바지를 보니 기저귀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급히 유아 휴게실로 갔다. 젖은 기저귀를 벗기고 새 기저귀를 꺼내는데 아이가 칭얼거리며 안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방심한 나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 순간 내 얼굴에 오줌이 시원하게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어찌까. 아들이 오줌 싸서 아빠가 다 젖었네.”
“봤어? 오줌이 입안에 들어갔네.”


아이는 당황스럽고 창피한 나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더 이상 장을 볼 상황이 아니었다. 얼굴만 대충 닦고 기저귀를 채운 뒤 쏜살같이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전상현 님 | 광주시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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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coms333
2018.01.06
아버지의 진실한 사랑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행복한 가정 되세요. 
잘지낸오늘
2018.01.24
읽으면서 같이 웃었습니다. 지혜롭고 따뜻한 아버지... 나중에 커서 아이는 알 겁니다.^^
초록이
2018.01.25
ㅋㅋㅋㅋㅋㅋ  너무 행복한 가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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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이별 후애(後愛)
2018.10.10   조회수 : 553    댓글 : 3개
주말 오후, 남편과 멀찍이 떨어져 앉아 마른 빨래를 함께 개켰다. 남편이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더라도 나에게 더 잘해 줄 걸 하고 자책하지 말기로 해요. 난 충분히다 받았으니.”나는 살짝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사이에는 다섯 식구분의 빨래 더미가 있었다. 다른 질문이나 설명 없이 가장 하고 싶은 대답만 덧붙였다. “나도 이하 동문.”대화는 짧고 담담했지만 또 깊고 다정했다. 이 대화 속에 우리 만남의 본질과 목표가 담겼다. 이별의 순간 받을 것 다 받고 줄 것 다 주었다고 이야기할수 있는 사이. 잘 만났기에 잘 이별할 수 있는 사이.모든 만남은 이별을 예비하고, 모든 이별에는 만남의 본질이 들었다. 어쩌면만남과 이별의 순환이 이토록 긴밀하기에 우리는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안녕’이라고 같은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잘하라’며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또 잘 잊고 잘 속는 데다 빨래 더미처럼 쌓인 수많은 일상의과제에 압도되어 그 소중함을 쉽게 잊는다. 이별의 지점에 도달하고 나서야 잘주지 못했음에, 잘 받지 못했음에, 그리하여 이제는 남은 마음, 남은 사랑과 홀로 남겨졌음에 가슴을 친다.이제 막 이별한 사람만큼 만남에 대한 주옥 같은 통찰을 전해 주는 사람도없는 법. 시어머니와 이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남편과의 사소한 말다툼 후 뒤틀려 차가워진 내 마음을 다시금 말랑말랑하게 적셨다.“우리가 서로에게 원한 건 그저 사랑을 주고받는 것뿐일 텐데, 남는 것은 결국 못다 준 사랑밖에 없는데,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은 시간 서로 원망하고, 오해하고,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는 데에 마음을 썼는지 몰라요.”미처 전하지 못한 남은 사랑이 회한과 자책, 미련으로 전환되는 것을 들으며, 내 안의 사랑을 차갑게 얼려 두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순간마다 마음을고쳐먹자고 결심한다. 아낌없이 주고, 받은 것을 소중히 간직하자고. 이별 후남는 사랑이 없도록.선안남 님 | 상담 심리사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자전거 만학도
2018.10.10   조회수 : 400    댓글 : 0개
스물다섯 여름날, 처음 자전거를 배웠다. 공원에 가 보니 다섯 살짜리도 자전거를 탔다. 나는 그보다 이십 년 정도 늦은 셈이다. 비록 만학도지만 무척 재미있었다.“그 나이 먹도록 자전거도 못 타?”그간 이런 말을 들어도 당당하게 답했다. 곧배울 거라고.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변명을찾자면 어릴 때 자전거를 사 달라고 할 형편이아니었다.자전거를 배우는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배울 게 있는 건 행복한 일임을. 다른 사람들 눈에는 해변가 공원에서 자기 몸집만 한 자전거와 씨름하는 남자모습이 우스웠을지 모른다. 그래도 분명 즐거워 보였을 거다. 입시나 취업 등필요에 의한 수동적 학습이 아닌, 단지 내가 원한다는 이유로 배우는 게 오랜만이라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꿈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자전거 여행. 거창하진 않지만 배움으로써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음이 중요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워 보고 싶은 사소한 일이 늘 있으면 좋겠다.누구나 “나는 아직도 이걸 못해.”라고 말할 만한 것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그때 이렇게 얘기하면 어떨까.“나는 아직도 배우는 즐거움이 남아 있어서좋아!”오재희 님 | 부산시 남구
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사내는 검을 들었다
2018.10.10   조회수 : 330    댓글 : 1개
4년 전, 가족의 생계 수단이자 나 자신의 존재 이유인 전파상을 접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곧 일흔인데 이제 무엇을 하나?’ 잦은 상념으로 의욕이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만 야금야금 쌓였다.‘이래선 안 돼. 나답지 않아!’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오랜만에 청소도 하고 공원을 걸었다. 바쁘게 움직이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나 곧 ‘운동하면 뭐해? 기분 좋으면 뭐하냐고?’라는 속삭임이 들려왔다.내게 주어진 삶의 소중한 시간을 좌절과 우울로 흘려보냈다. 어느 날, 독립해 사는 딸이전화로 뜻밖의 말을 했다. 요즘 ‘소설’을 쓴단다. “아빠, 처음엔 생각이 많아서 잘 안 됐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의외로 잘 써져. 도입부를 메일로 보냈으니까 수정해 봐!”설레는 마음으로 딸의 글을 읽었다. 내가 문학에 관심 있는 걸 아는 딸은 종종 “아빠도글 한번 써 봐. 나보다 책을 많이 읽었잖아.”라고 말하곤 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 이웃이나 친지 집에 가면 으레 책꽂이에 먼저 눈이 갔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처럼 결말이 안타까운 명작을읽은 뒤에는 내 멋대로 그 이후를 생각해 보았다. 스칼렛 오하라가 매정하게 떠난 레트 버틀러를 찾아가 사랑을 구한다든지, 포로가 된 조던이 탈출에 성공해 마리아를 다시 만난다든지. 행복한 결말을 찾아 상상의 나래를 폈다.명작의 속편을 상상하는 건 얼마든지 하겠으나, 초등학교와 라디오 기술 학원 학력이전부인 내게 소설 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노트북 자판에 손가락을 올려 보았다. 그러곤 딸의 글을 수정했다. 한 문장, 한 문단……. “이럴 수가. 글이 써지네!” 글쓰기라곤 학교 작문 숙제밖에 해 본 적 없는 나는 희열을 느꼈다.읽기와 수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멋대로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었다. 마치 내가글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유치한 글이라도 나의 혼이 스며든 생물인 것이다.그런데 정작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저 시계 왜 저래?”벽시계를 쳐다본 나는 순간 고장 난줄 알았다. 휴대 전화까지 확인하고서야 내가 여섯 시간 동안 의자에서 단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 불과 몇 쪽의 글을 썼을 뿐인데 말이다. “오, 이런!”소름이 쫙 돋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대체 이게 뭔 일이다냐?”소설을 쓰는 것은 자신이 그리려는 ‘경이로운 세계’에 스스로 들어가는 일인 걸 깨달았다. 그곳의 대기를 호흡하며 함께 얘기하고, 은밀함을 엿보기도 하고, 때론 슬픔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면서.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뿐 아니라 글을 쓰면 뻑뻑하게 녹슨 두뇌가 정비한 엔진처럼 부드럽게 돌아간다는 사실도 알았다.내가 쓴 글을 보고 ‘어떻게 이런 단어와 서정적 묘사를 떠올렸을까?’ 싶었는데, 그건 오래전 읽은 책들 덕분이었다. 그때 얻은 표현력은 없어진 게 아니었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녹슬었을 뿐.창작의 기본 형식도 모르지만, 내 글이 활자화될 것도 아닌데 아무렴 어떤가. 그저 살아오면서 축적한 경험을 소재로 이야기를 지어 보고 싶다.“사내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검을 빼 들었다. 살비듬이 희끗희끗한 마른 팔뚝에검푸른 핏줄이 얼기설기 불거진다. 말은 당장 튀어 나갈 듯 검은 갈기를 부르르 떤다. 사내는 칼끝을 앞으로 하고, 말 옆구리에 박차를 힘껏 가했다. 그리고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빛나는 풍차를 향해 질풍처럼 달려들었다.”이찬수 님 | 경기도 성남시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그 많은 노심초사 덕에
2018.10.10   조회수 : 305    댓글 : 0개
한창 꽃이 핀 시절에는 날이 추웠다. 아카시아꽃이 추운 날씨를 못 견디고너무 빨리 져 버린 통에 꿀벌 치는 사람들이 울상이었다. 봄 같지 않은 봄 때문에 즐겁지가 않았다. 짧은 장마 끝에 타는 가뭄이 너무 길었다. 한낮엔 맨 흙바닥에 발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세상천지가 펄펄 끓었다. 여름은 너무 여름 같아괴로웠다. 일망무제로 높고 넓어진 가을 하늘을 기대했건만 장마 같은 장대비가 하루가 멀다 하고 퍼붓는 통에 온 집 안이 눅눅했다. 눅눅한 방바닥에 개미들이 떼 지어 출몰했다. 개미를 쓸어 내며 울고 싶어졌다. 날씨만 놓고 보면 올해는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리 행복하지 못한 날들이 이어진 것 같다.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뚝 그친 어느 날을 틈타 기습적으로 김장 무씨를 넣고 김장 배추 모종을 했다. 씨와 모종들은 비가 너무 안 와도, 너무 많이 와도안 되는지라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건지,안 오기를 바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비는 어김없이 장대비로 쏟아졌다. 무씨는 썩을 수도 있고 배추 모종은 그 뿌리가 일어나서 해 나는 어느 날엔다 말라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비 그친 어느 날 무씨는 딱 내가 심은 그만큼씩 돋아나고 배추 모종은 가늘디가는 실뿌리를 착근하게 땅에 내리고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을 품새로 늠름하다. 왈칵 눈물이 날 지경이다.시골에 이사 와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씨앗을 땅에 넣을 때마다 사실은 그런 비슷한 노심초사를 했다. 이 작은 씨앗에서, 지금은 어떤 형태도 상상할 수없는 조그만 먼지 혹은 부스러기 같은 물체에서 어떻게 그 풍성한 초록 잎이,그 장대한 줄기가, 그 튼실한 열매가 생겨날쏘냐, 긴가민가해진 것이다. 의심이라면 의심이고 불안이라면 불안인 그런 심사는 그 조그만 씨앗들에서 싹이 터흙 위로 삐죽삐죽 올라와 줄 때에야 눈 녹듯 사라진다. 그동안에 나는 오늘은싹이 텄나, 안 텄나, 자고 일어나면 밭으로 내달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모든씨앗은 딱 내가 뿌린 만큼 올라왔다. 올라와서 벌레나 새한테 제 몸을 내준 것말고는 언제나 나의 씨앗들은 난 만큼 정확하게 커 주었다. 그러고는 햇빛과바람과 물의 힘만으로도 내게 천둥 같은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내가 보탠 것은 오직 노심초사뿐이었는데도.시장에 가서 깜짝 놀랐다. 지난한 봄과 여름을 생각하면 시장에 흠집 하나없는 노오란 배, 윤기 흐르는 붉은 사과, 탱글탱글한 포도가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싶어서다. 나는 지레 포기했다. 올해는 과일 같은 것은 먹어 볼 수 없을 거라고. 그러나 시장에는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똑같이 과일 장수는 과일을팔고 채소 장수는 채소를 팔았다. 농부들은 어떻게 저 채소들을, 저 과일들을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을까.나는 이따금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놀란다. 아, 저 많은 아이를, 저 아이들만큼이나 많은 부모가 기르고 있구나, 부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기르고 있겠구나. 그리고 나도, 내 동무도, 지금의 어른도, 그 어른의 어른도 다 그렇게 누군가의 수고로 길러져서 아이가 어른이 되었구나. 새삼스러워져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올 때가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코끼리도, 원숭이도 그 어미 혹은 가족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어른이 된다. 그어미들의 노심초사의 나날이 아기 코끼리, 아기 원숭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것이다.시장에 나온 저 채소, 저 과일 하나하나가 다 농부의 노심초사에 다름 아님을 알겠다. 내가 농사를 지어 보니 알겠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내가 말썽을부리면 나중에 꼭 너 같은 자식을 낳아 봐야 당신 속을 알 거라는 말씀을 노상했다. 그때는 그 말이 듣기 싫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아이가 속을 상하게 하면 나도 모르게 우리 어머니의 그 말씀이 내 입에서도 나왔다. 어머니 말씀대로 예전의 나처럼 속을 썩이는 자식을 키워 보니 알겠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절로 크는 건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세상에 모든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결국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의 끊임없는 노심초사 덕분이라는 것을.누군가의 노심초사가 아닌들 이 가을에 저 아름다운 과일들을 어떻게 맛볼 것이며 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어디 가서 들을 것인가. 사정이 그러하니 과일 사는 사람은 흠집 난 과일이라도 너무 타박하지 말고, 어린 사람은 어른의 잔소리에도 좀 너그러워지기를 바라는 게 그리 무리한 바람은 아닐것이다.공선옥 님 | 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행운
2018.09.07   조회수 : 1,822    댓글 : 1개
늘 반항아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학창 시절.나는 부모님,선생님,친구까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이였다.어릴 적부터 깊어진 부모님과의 갈등의 골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선생님들의 평가도 한결같았다. “길들여지지 않으려 하고,딱히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없는 아이.”방황을 거듭하다 일본 지휘자‘오자와 세이지’가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암보(악보를 외워 기억함)로 지휘하는 영상을 보았다.가슴이 뛰었다.인생에서 처음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자존감이 낮은 시기였던 탓에 내가 감히 지휘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단지 관련 전공으로 대학을 다닐 수만 있다면 행복할듯했다.그러나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아버지는 여자아이에게 지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크게 반대했고,갈등은 더욱 심해졌다.나는 서러움이 북받쳐 집을 나가고야 말았다.얼마간 친구에게 신세 지다 돌아오니 부모님은 비로소 나를 속박하길 포기한 듯했다.도전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몰래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떨어지더라도 어차피 아무도 모르겠지.’이런 생각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화성법(작곡 또는 지휘과 입시에서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과목 중 하나)책을 펴며 가슴이 벅차올랐고 난생처음 느껴 보는 설렘에 푹 빠졌다.스스로 나의 길을 찾고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희열을 맛보게 해 주었다.스무 살,내 인생의 전환점은 그렇게 불현듯 찾아왔다.음악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지휘자로 살아간다는 것.같은 분야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으며 무리 없이 성취를 이루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나 역시 주변에 나름 긍정적이고 열심히 사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으니 늘 든든한 지지가 함께하는 사람으로 보이리라.하지만 부모님은 소위‘엘리트 학생’을 접하는 분들이고,당신들의 가르침과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훌륭한 제자들과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소심했던 나는 스펀지는커녕 부모님의 힐난과 비교에 늘 상처받았다.그러던 내가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설렘을 느낀 것,그로 인해 커다란 전환점을 맞은 건 정말이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진솔 님|대구MBC(엠비시)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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